시암송국민운동본부

눈부신 날 - 허형만 참새 한 마리 햇살 부스러기 콕콕 쪼아대는 하, 눈부신 날

사랑한다는 것은 ․ 1 (박덕은) 임이시여 사랑한다는 것은 맘 그릇을 비우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눈물의 의미를 헹구어내는 것입니다.

저녁 산길 - 이시영 길 하나가 산꼭대기를 향해 쭉 뻗어 있다 저 길을 누가 부랴부랴 갔을 것 같다

프로포스 - 옥영의 78회 생일에 - 범대순 가파른 산마루 막바지에 쉬면 모터가 꺼져버린다 나는 그것을 옥영에게서 배웠다 산행에 계절이 없는 까닭도 거기 있었다 평생 8월같이 산 생애 모진 세월이 있었고 인생이 있었고 귀한 여자는 게을러야 한다는데 옥영의 손은 너무 예쁜 데가 없었..

귀가 길에 - 허형만 내 친구 문기호 교수의 십팔 번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다 어젯밤에도 회식 끝물에 어김없이 부른 노래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였다 귀가 길, 별빛이 지상에 닿지 않는 그 쓸쓸함에 취한 나는 흥얼거리듯 말했다 어이, 문교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니? 그 노래 ..

절대신앙 - 김현승 당신의 불꽃 속으로 나의 눈송이가 뛰어 듭니다. 당신의 불꽃은 나의 눈송이를 자취도 없이 품어 줍니다.

무제 - 김현승 주여, 이 고요한 시간을 당신에게 바칩니다. 주여, 이 시간은 가장 정결하게 비어 있습니다. 빈 그릇과 같이 가득차 있습니다. 당신의 고요한 은혜로 가득차 있습니다. 주여, 이 시간엔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소리만이 들립니다. 눈물의 소리만이 들립니다. 주여, 이 시간..

장날 - 노천명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었다. 송편 같은 반달이 싸릿문 위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 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까워지면 이..

웃음 - 김상옥 하하 하하 웃는 소리 누구의 웃음 호호 호호 웃는 소리 누구의 웃음 참아도 참아도 못 참는 웃음 키킥 키킥 웃는 웃음 속눈썹 생긋이 웃는 웃음 누구의 웃음 앞니빨 빵긋이 웃는 웃음 누구의 웃음 생긋 빵긋 웃는 그 웃음 소리도 소리도 없는 웃음

내 안의 나 - 김재진 상처 받은 이를 껴안기에 나는 너무 작다. 작은 나를 넘어서기에도 나는 너무 작다. 멀리 있는 사람이여, 나는 아직 너를 안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