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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창작예술촌 1호

무등일보 아트플러스 詩 칼럼 (2023. 5. 31 발간 예정) 순천 창작예술촌 1호 몇 주 전 곽재구 시인의 ‘창작의 집’이라는 순천 창작예술촌 1호를 찾아갔습니다. 이 공간은 순천시가 곽 시인에게 제공한 건물이라고 합니다. 공공기관이 한 시인을 위해 이런 귀한 선물을 해 준 게 무척 좋아보였습니다. 이 공간은 순천문학관(동화작가 정채봉과 소설가 김승옥을 기념하는 곳)과 함께 순천문학의 명소의 하나가 되리라 믿습니다. 창작예술촌은 주변이 한가롭고 편안해 보였습니다. 이곳은 광주에서와는 다른 시간이 흐르는 듯했습니다. ‘정와’(靜窩, 조용한 움집)라는 아담한 건물 1층(‘은하수’라는 이름의 전시 갤러리)에 들어서자 미술사학자로 유명한 이태호 화백의 수묵화와 함께 낯익은 소설가, 시인 몇 분(한승원, 김용..

오월의 시들

무등일보 아트플러스 詩 칼럼 (2023. 5. 17 발간 예정) 오월의 시들 ‘계절의 여왕’ 오월 속에 있는 게 참 행복합니다. 나이가 드니 앞으로 오월을 몇 번이나 맞을 수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오월 시들도 오월답게 맑고 밝고 싱그러운 기운을 뿜어줍니다. 오늘 시 모임에선 김용호 시인의 ‘오월의 유혹’과 ‘오월이 오면’을 암송했습니다. “곡마단 트럼펫 소리에/ 탑은 더 높아만 가고// 유유히/ 젖빛 구름이 흐르는/ 산봉우리// 분수인 양 쳐오르는 가슴을/ 네게 맡기고, 사양(斜陽)에 서면/ 풍겨오는 것/ 아기자기한 라일락 향기// 계절이 부푸는 이 교차점에서/ 청춘은 함초롬히 젖어나고// 넌 이브인가/ 푸른 유혹이 깃들어/ 감미롭게 핀/ 황홀한 오월.” (‘오월의 유혹’) “무언가 조용히/ 가..

한 독문학자의 아름다운 삶

무등일보 아트플러스 詩 칼럼 (2023. 4. 12 발간 예정) 한 독문학자의 아름다운 삶 전영애 명예교수(서울대 독문과)에 대해 관심을 갖게된 건 서울대총동창회보에 실린 그분에 관한 기사를 읽고부터였습니다. 그후 KBS 다큐 영상을 본 후, 그분이 짓고 가꾸고 있는 경기도 여주 강천면 걸은리 작은 골짜기 안 큰 뜰에 에워싸여 있는 여백서원(如白書院)을 찾아 전 교수를 뵙고 강의를 듣기도 했습니다. 여백서원의 모토는 ‘위여백(爲如白)’, ‘위후학(爲後學)', ‘위시(爲詩)’라고 합니다. ‘맑은 사람들을 위하여’, ‘후학을 위하여’, ‘시를 위하여’ 라는 뜻이지요. 여기에선 동서의 예술가들, 학자들, 학생들, 관심있는 일반인들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전 교수는 방문자들이 이곳에서 숨도 돌리고 ..

봄의 교향악

무등일보 아트플러스 詩 칼럼 (2023. 3. 15 발간 예정) 봄의 교향악 2개월의 방학을 보내고 그제 시 모임 다시 갖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트럼펫 연주 영상으로 이은상 시, 박태준 곡 ‘동무 생각’을 감상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사계절의 가사가 모두 아름답습니다. 보통, 시인이 자신의 사연을 담아 작사를 하면 거기에 작곡자가 곡을 붙이는데, 이 노래는 반대의 경우입니다. 가사가 정겹고 곡도 편하게 부를 수 있게 만들어져 대중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마음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성악곡으로는 이은..

유언이 담긴 책

무등일보 아트플러스 詩 칼럼 (2023. 3. 29 발간 예정) 유언이 담긴 책 팔십 중반을 넘기신 맏형이 네 번째 저서를 보내주셨습니다. 이번 책은 지난 세 권의 책과는 달리 자녀손들에게 유서로 주었다는 말씀에 숙연해졌습니다. 형은 회사에서 정년 퇴임한 후 편안한 노후 대신 공부를 택했습니다. 신학대학원 3년 과정을 마치고 목사가 되고 신학과 신앙에 관한 깊이있는 책들을 발간하셨습니다. 동생들에게 웃으면서, 해오던 공부(한 독일 신학자의 독일어 원서 깊이 읽기)를 마칠 수 있게 5년만 더 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평생 학생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습이 좋아보이고 본받고 싶어집니다. 이번에 받은 네 번째 책을 읽으면서 이전의 세 권도 다시 읽고 싶어졌습니다. 읽으면서 신앙에 대한 글은 제외하고 우리 마..

오탁번 시인을 기리며

무등일보 아트플러스 詩 칼럼 (2023. 3. 1 발간 예정) 오탁번 시인을 기리며 며칠 전 오탁번 시인의 별세 소식을 듣고, 오래 전에 광주의 한 문학행사에서 뵈었던 중절모를 쓴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따님 가혜 씨가 아버지의 지인에게 전화로 “아버지께서 어젯밤 편안하게 숨을 거두셨다”고 알렸다고 합니다. 이 딸의 결혼식 때 시인은 아빠의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담은, 딸의 이름을 제목으로 단 시를 남겼지요. “좜좜/ 고사리 손// 눈부신/ 웨딩드레스// 아빠 눈은/ 은하수 물결// 가혜 눈은/ 별빛” (‘오가혜’) 그분의 삶을 돌아보면 한 인간으로, 작가로서 성실한 삶을 살아오신 것 같습니다. 가난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꿈꾸기 어려웠을 때 어린 탁번을 눈여겨 본 선생님이 원주에서 군인이었던 오빠..

아름다운 만남

무등일보 아트플러스 詩 칼럼 (2023. 2. 1) 아름다운 만남 몇 주 전, 김정옥 선생(얼굴박물관장, 연극연출가, 중앙대 교수와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역임)이 ‘아름다운 만남’(부제: 20세기 내가 만난 예술인)이라는 책을 보내주셨습니다. 김 선생님과는 오래 전 L선생님 덕분에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경기도에 있는 얼굴박물관은 두 번 (한 번은 재불화가이신 김인중 신부님과 함께) 방문하여 식사와 차담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는 얼굴사진과 함께 40여 명의 국내외 예술인들이 소개가 되었습니다. 서문에서 김 선생은 만남의 의미를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20세기의 기억 속에 파묻힌 아름다운 만남// 스승이기도 하고, 형님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후배이기도 한 다양한 만남 속에 // ..

소설로 맞춤법 익히기

무등일보 아트플러스 詩 칼럼 (2022. 12. 28 발간 예정) 소설로 맞춤법 익히기 최근 신경숙의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읽으며 내가 잘못 알고 있거나 많은 이들이 틀리게 쓰는 낱말들을 골라봤습니다. 우리 말을 정확히 쓰는 작가의 문장들이 맞춤법 책의 예문보다도 더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소개하는 문장은 작품 속 문장이고, 괄호 안에 든 낱말은 우리가 틀리게 쓰는 경우입니다. 1) 큰오빠 집에서 올케가 그러는데 다 그런다고 하더라고. (올캐) 2) 그는 J시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하고... (애매) 3) 아버지가 나를 보내고 울었다는 얘기는... (애기) 4) 어두워진 후까지 소주 내기 윷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윳판) 5) 오백원짜리 지폐가 한두장 들어 있을 때도 있었고... (한..

‘아버지에게 갔었어’

무등일보 아트플러스 詩 칼럼 (2022. 12. 14 발간 예정) ‘아버지에게 갔었어’ 지난 2주간 신경숙의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세 번 읽었습니다. 최근 네 자녀를 둔 아버지였던 형이 별세를 한 터라 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관심이 이 소설에 빠지게 했나봅니다. 신 작가의 소설은 ‘리진’에 이은 두 번째입니다. 우리나라의 1급 소설가답게 상상력과 문장력 모두 뛰어나 보였습니다. 소설 속의 아버지는 1933년생. 결혼 전, 외삼촌이 외할머니에게 했던 소개가 아버지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양친을 일찍 잃고 소 한 마리로 부지런히 일하며 살림을 늘려가는 허세가 없는 사람.” 결혼 후 얻은 여섯 자녀를 다 공부 시키고 (때로는 돈벌이를 위해서 서울로 올라가 막일을 하기도 하고) 이제는 치매기도 보이..

형을 보내고

무등일보 아트플러스 詩 칼럼 (2022. 11. 30 발간 예정) 2주 전, 만 80세 작은형(D신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교교시절부터 ‘타임지’를 끼고 살아 영어가 자유로웠고, 운동보다는 책읽기를 좋아했던 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걸을 때 숨이 차고 등이 굽기 시작하고 시력도 좋지 못해 노인 티가 났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우리와 이별할 줄은 몰랐습니다. 별세 3일 전에 밤새 토했다고 합니다. 아마 상한 어패류 때문이었던 거 같습니다. 병원 치료가 필요할 거 같아 아침에 형수와 내가 가까운 내과의원으로 모시고 가서 종일 여러 검사를 받고 링거도 맞았습니다. 다음 날도 검사를 위해 다시 같은 내과의원으로 모시고 가는데 걷기가 불편할 정도로 힘이 빠져 있었습니다. 의원에 도착해서는 기진맥진해서 실신 상태에 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