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아트플러스 詩 칼럼 (2023. 5. 17 발간 예정)
오월의 시들
‘계절의 여왕’ 오월 속에 있는 게 참 행복합니다. 나이가 드니 앞으로 오월을 몇 번이나 맞을 수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오월 시들도 오월답게 맑고 밝고 싱그러운 기운을 뿜어줍니다.
오늘 시 모임에선 김용호 시인의 ‘오월의 유혹’과 ‘오월이 오면’을 암송했습니다.
“곡마단 트럼펫 소리에/ 탑은 더 높아만 가고// 유유히/ 젖빛 구름이 흐르는/ 산봉우리// 분수인 양 쳐오르는 가슴을/ 네게 맡기고, 사양(斜陽)에 서면/ 풍겨오는 것/ 아기자기한 라일락 향기// 계절이 부푸는 이 교차점에서/ 청춘은 함초롬히 젖어나고// 넌 이브인가/ 푸른 유혹이 깃들어/ 감미롭게 핀/ 황홀한 오월.” (‘오월의 유혹’)
“무언가 조용히/ 가슴 속을 흐르는 게 있다/ 가느다란 여울이 되어/ 흐르는 것// 이윽고 그것은 흐름을 멈추고 모인다/ 이내 호수가 된다/ 아담하고 정답고 부드러운 호수가 된다/ 푸르름의 그늘이 진다/ 잔 무늬가 물살에 아롱거린다// 드디어 너, 아리따운/ 모습이 그 속에 비친다// 오월이 오면/ 호수가 되는 가슴// 그 속에 언제나 너는/ 한 송이 꽃이 되어 방긋 피어난다.” (‘오월이 오면’)
시를 읽으면서 “참 좋다”는 느낌이 들 때면 장석주 시인의 다음 고백에 공감합니다. “시는 아름다운 것들을 갑절로 아름답게 하고, 좋은 것들은 두 배로 더 좋게 만든다. 그래서 좋은 시는 무지개를 바라보는 것, 기쁨을 주는 음악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허를 기쁨으로 바꾸고, 기분을 화창하게 하고, 메마른 감정을 적셔 생기를 더하게 한다.”
5월에 태어나서 오월에 떠난 피천득 선생도 오월에 관한 시와 산문을 남겼지요 (잘 알려진 ‘오월’이란 산문은 많은 이들이 지금도 시로 생각하고 있는 글입니다).
먼저 시 ‘창밖은 오월인데’를 소개합니다. “창밖은 오월인데/ 너는 미적분을 풀고 있다/ 그림을 그리기에도 아까운 순간// 라일락 향기 짙어가는데/ 너는 아직 모르나 보다/ 잎사귀 모양이 심장인 것을// 크리스탈 같은 美라 하지만/ 정열보다 높은 기쁨이라 하지만/ 수학은 이무래도 수녀원장// 가시에도 장미 피어나는데/ ‘컴퓨터’는 미소가 없다/ 마리도 너도 고행의 딸”
이 시 소개 중 한 회원이 묻더군요. ‘마리’가 누구냐고. 마리는 노벨 물리학상(남편과 함께)과 화학상을 받은 폴란드 출신 퀴리 부인을 말합니다. 피천득 선생의 딸은 나중에 미국에서 물리학 교수가 된 피서영 씨고요.
‘오월’이란 산문은 시처럼 아름다워 몇 년 전에 왼 후 오월이면 늘 읊곤 합니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중략)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 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이번 호 암송추천시는 김대원 님의 ‘바보가 되고 싶다’입니다. 손주 사랑에 기꺼이 바보가 되고 싶은 할배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바보가 되고 싶다/ 김대원 (1969 ~ )
손주 오는 날,
할배는 바보가 된다
(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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