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아트플러스 詩 칼럼 (2023. 4. 12 발간 예정)
한 독문학자의 아름다운 삶
전영애 명예교수(서울대 독문과)에 대해 관심을 갖게된 건 서울대총동창회보에 실린 그분에 관한 기사를 읽고부터였습니다. 그후 KBS 다큐 영상을 본 후, 그분이 짓고 가꾸고 있는 경기도 여주 강천면 걸은리 작은 골짜기 안 큰 뜰에 에워싸여 있는 여백서원(如白書院)을 찾아 전 교수를 뵙고 강의를 듣기도 했습니다.
여백서원의 모토는 ‘위여백(爲如白)’, ‘위후학(爲後學)', ‘위시(爲詩)’라고 합니다. ‘맑은 사람들을 위하여’, ‘후학을 위하여’, ‘시를 위하여’ 라는 뜻이지요. 여기에선 동서의 예술가들, 학자들, 학생들, 관심있는 일반인들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전 교수는 방문자들이 이곳에서 숨도 돌리고 옷깃도 한번 여며보길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입구에서 시작해서 전망대에 이르는 오솔길에는 각종 나무들과 꽃들이 심겨져 있고 군데군데 시와 좋은 말들이 적힌 석판이 놓여 있습니다.
그날 동행한 L선생님께 받은 전 교수의 저서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2021, 문학동네)를 읽고 전 교수의 삶을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열정과 온전한 진선미(眞善美)로 가득한 그분의 삶은 한편으론 나를 부끄럽게 하고 다른 한편으론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살고 싶은 열망을 갖게 했습니다.
이 책에서 내게 큰 울림을 준 몇 문장을 소개합니다.
“꿈을 가지라는 그런 추상적인 말 대신, 뜻을 가지면 사람이 어떤 높이와 넓이에 이를 수 있는지, 또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키웠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실물 예 하나를 젊은이들을 위해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해왔습니다.”(괴테의 삶)
“시는 어떤가요 (...) 어떤 폭력도 없습니다. 아름답고, 부드럽고, 무한히 열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마음에 남습니다. 아무런 강요가 없습니다.”(시에 대해서)
“저는 겨우 가끔씩 편지를 보내는데, 선생님(라이너 쿤체 시인)께서는 늘 지극정성의 긴 답을 주십니다 (...) 시인이란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 분의 글을 읽고 어찌 함부로 살 수 있을까요.”(삶에 대해서)
“그 5년이 나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가장 생산적인 시기가 되었습니다. 마침 (놀랍고 감사하게도) 독일 프라이부르크 고등연구원의 수석연구원으로 초빙을 받았습니다. 아무런 조건없이 마음껏 연구에 매진하는 곳이었지요. 원도 한도 없이 공부를 했습니다.”(공부에 대해서)
“10년 후의 나에게 쓴 편지. 그저 멋있게 생각해낸 반짝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아주 귀한 경험이 있어 그걸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언젠가, 그러니까 18년 전쯤 누군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10년 뒤엔 무얼 할거냐고 말입니다. 저는 그 질문자에게 지금껏 감사하고 있습니다.”(10년 후의 나)
“그래도 가장 행복한 시간은, 서원에서 해야 하는 일들을 어느 정도 마무리 한 늦은 밤, 작은 등불을 들고 캄캄한 후원을 걸어 작은 단칸방 집의 불을 켤 때입니다.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인 것입니다. 노동하고, 읽고, 쓰고, 아마도 그게 마지막 날까지의 저의 모습일 것입니다.”(행복한 시간에 대해서)
일반인 관람 개방은 매월 마지막 토요일이랍니다. 모든 이들에게 관람을 꼭 권하고 싶습니다.
이번 호 암송추천시는 김초혜 님(소설가 조정래 선생의 부인)의 ‘삶’입니다. 손자와 할머니의 마음이 잘 담겨 있습니다.
삶/ 김초혜 (1943 ~ )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손자 재면이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할머니
(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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