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암송칼럼/시암송칼럼(2021)

유언이 담긴 책

日日新 2023. 3. 23. 17:56

무등일보 아트플러스 詩 칼럼 (2023. 3. 29  발간 예정)

유언이 담긴 책

팔십 중반을 넘기신 맏형이 네 번째 저서를 보내주셨습니다. 이번 책은 지난 세 권의 책과는 달리 자녀손들에게 유서로 주었다는 말씀에 숙연해졌습니다.
  
형은 회사에서 정년 퇴임한 후 편안한 노후 대신 공부를 택했습니다. 신학대학원 3년 과정을 마치고 목사가 되고 신학과 신앙에 관한 깊이있는 책들을 발간하셨습니다. 동생들에게 웃으면서, 해오던 공부(한 독일 신학자의 독일어 원서 깊이 읽기)를 마칠 수 있게 5년만 더 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평생 학생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습이 좋아보이고 본받고 싶어집니다.
  
이번에 받은 네 번째 책을 읽으면서 이전의 세 권도 다시 읽고 싶어졌습니다. 읽으면서 신앙에 대한 글은 제외하고 우리 마음에 양식이 될 수 있을 글을 골라봤습니다. 
  
“(열망과 꿈) 사람은 무엇인가를 갖기 위해 열망과 꿈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꿈과 열망이 없는 사람은 성취도 없다.” 
  
“(존경의 대상) 사람은 존경의 대상이 있는 것이 좋다. 아니 존경하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만남) 우리는 일생을 통해서 여러 가지 만남을 갖는다. 특히 어떤 사람과의 만남을 갖는다. 그런 만남을 통해서 내가 영향을 받고 형성된다. 그런 만남 가운데서도 특별히 내 운명이 결정되고 전환되는 그런 만남이 있다.” 
  
“(자기 정체성) 나는 나이 들면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그건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다시 말해서 자기 정체성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자기 정체성을 안다는 것은 곧 내가 이 세상에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가를 아는 것, 다시 말해서 자기 생의 뜻(Mission)과 생의 과제(Life-Work)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취생몽사(醉生夢死)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이게 분명하지 못하면 외적으로 어떤 삶을 살아도 정말 뜻있는 삶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나라와 조상에 대한 감사) 태어나서 살고 있는 조국과 이만큼 나라를 만들어 온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에 대한 고마움도 알아야 한다.”
  
“(선물) 영화 ‘타이타닠(Titanic)’의 남자 주인공 잭(Jack)이 상류층의 호화로운 파티장에서 자기는 떠돌이 화가라고 밝히는 그 당당한 모습과 자기는 내일의 보장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선물이라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품위) 우리 사회에서 소위 출세하고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세상살이에는 유능할지 모르나 사람으로서의 품위(Human Dignity)를 많이 잃고 살고 있지 않나 생각 된다. 우리 사람은 막 사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이 동물과 다른 점이다. 동물은 본능대로 산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규범을 가지고 산다.”
  
“(시 암송) 좋은 시를 발견하고 읽는 것도 귀한 일이지만, 참 좋은 시를 외우고 암송한다는 것은 더 귀한 일이지 않나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시를 외운다는 것은 자기 마음의 보석함에 그 언어의 보석을 담아 자기 소유로 만드는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번 호 암송추천시는 박태진 님의 ‘아마도’입니다. 민들레의 노란 얼굴에서 아프리카 아이를 떠올린 화자(話者)의 마음이 무척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아마도/ 박태진

산비탈 돌 틈 사이 민들레/
티없이 노란 얼굴이/
아프리카 탄자니아 그 아이 같다// 눈으로 말하고/
사진 몇 장 찍고 돌아서는데/
끝까지 보고 있다//
아마도/ 그것이 이 세상/
마지막인 줄 아는가 보다
(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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