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송 추천시

자화상 (김동리)

日日新 2009. 3. 27. 20:06
 

자화상

- 김동리


나는 오랜 옛 서울의
한 이름 없는 마을에 태어나
부모형제와 이웃 사람의 얼굴, 그리고
하늘의 별들을 볼 적부터
죽음을 밥 먹듯 생각하게 되었다.
아침에 피는 꽃의 빛깔과
황혼에 지는 동산의 가을 소리도
이별이 곁들여져, 언제나

그처럼 슬프고 또 황홀했다.
술과 친구와 노래는 입성인양 몸에 붙고
돈과 명예와 그리고 여자에도
한결같이 젖어들어
모든 것을 알려다
어느 것도 익히지 못한 채
오직 한 가지 참된 마음은
내가 눈감고 이미 없을 세상에
비치어질 햇빛과 피어나는 꽃송이와
개구리 우는 밤의 어스름과
그리고 모든 사람의
살아 있을 모습을 그려 보는 일이다.


* 김동리 / 1913년 경주에서 태어났다. 19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백로」가 입선했고, 1935년에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화랑의 후예」 당선했고,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산화」가 당선되면서 활발하게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37년 서정주, 오장환, 김달진 등과 함께 『시인부락』 동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경남 사천의 다솔사 부설 광명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47년에는 경향신문 문화부장, 1948년에는 민국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이후 서라벌예술대학과 중앙대학교 교수를 거쳐서 한국문인협회 명예회장을 역임했다. 1990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 생활을 하다가, 1995년 6월에 세상을 떠났다.

'암송 추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녹차 한 잔의 미소  (0) 2009.03.30
빈밭 (고은)  (0) 2009.03.28
물방울은 홀로일 때 아름답다 (박 찬)  (0) 2009.03.26
발작 (황지우)  (0) 2009.03.25
시가 오는 새벽 (정희성)  (0) 2009.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