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어른 한승헌 변호사
얼마 전 인터넷 뉴스에서 한 변호사의 부고가 떴습니다. 나도 모르게 “어?”소리가 나왔습니다. 험난한 시대를 올곧게 사신 한 변호사님! 이분도 고령과 병으로 죽음의 강을 피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한 변호사와의 첫 만남은 법학도 시절 읽은 ‘법과 인간의 항변’이라는 그분의 산문집이었습니다. 그 책은 그가 딱딱한 이미지의 법률가보다는 정의감과 인정을 함께 갖춘 휴머니스트임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멀리서 가까이서 수십 년을 지켜본 한 변호사는 초지일관 옳은 길을 따른 분으로 생각됩니다. 기독교계의 원로 김재준 목사는 그를 지우(志友)라고 칭하며 그에게 존경을 보냈습니다.
인권변호사 시절 그는 자신이 투옥의 고초를 겪기도 했지요. 그분처럼 인권변호사로 활동한 모 변호사가 나중에 불미스런 일에 연루되어 끝을 명예롭게 맺질 못한 걸 보면서 삶의 후반의 시간을 잘 가꾸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검사에서 변호사로 직을 바꾼 계기가 궁금했는데 다음의 일화를 읽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한 변호사가 검사로 일하던 5•16 군사정변 직후, 어느 날 출근했더니 선배 검사가 수사기록을 찢어서 난로에 태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유를 물으니 ‘위(군인들)의 지시’였다는 대답이 돌아왔고 이 일이 그가 검사직을 그만 둔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고 후배 법조인은 추측을 하였습니다.
그는 시집과 수필집 등 수십 권의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합니다. 대학시절엔 신석정 시인에게서 시적 재능을 인정 받기도 했다는군요.
그는 기독교인 민주인사들에 대한 변호의 과정에서, 의를 위해 기꺼이 고난을 감수하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특별한 삶의 모습은 유머를 즐기는 일이었습니다. 지인 한 분은 “그 유쾌한 재담을 다시 들을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 마지막으로 탄 한 변호사(몸무게 55kg)가 과하중부저가 울리자 기분 좋은 표정으로 “나도 무게 있는 남자로구나...” 하고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그의 부인 김송자 여사 얘기도 감동을 줍니다. 부인은 남편 때문에 여러 번 시련을 겪으면서도 “이제 그만 조용히 살자”거나 “그만 쉬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부인에 대해 “자신이 여러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내의 헌신과 수고 덕분이었다”는 고백을 남겼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제작된 묘비에는 생전의 한 변호사의 좌우명을 담은 가족들의 다짐이 적혀 있습니다. “고인의 신념을 따라 자랑스럽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부끄럽게 살지는 않겠습니다.” 한 변호사와 같은 대학을 나온 지인 한 분은 “한 변호사님이 동문이어서 모교가 자랑스럽다”고 하더군요. 우리 시대 맑고 큰 어른으로 살다 가신 한 변호사님! 그가 잠들어 있는 5•18 묘지에 가서 그 분의 생애를 돌아보며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고 싶습니다.
이번 호 암송추천시는 곽재구 님의 ‘채송화’입니다. 동화적인 상상력이 느껴지는 예쁜 시입니다.
채송화/ 곽재구 (1954 ~ )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웃고 있군요
샌들을 벗어드릴 테니
파도 소리 들리는 섬까지 걸어보세요
(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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