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강진에서 영랑문학상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수상자는 박라연 시인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박 시인과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 수상 소식이 반가웠습니다.
박 시인의 초중고 시절 절친인 드맹 시모임 A회원의 차로 네 사람이 일행이 되어 시상식 참석을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점심을 위해 학동에 있는 식당 ‘데이지’에 들렀습니다. 식당 주인은 얼마 전에 ‘쓰지 않으면 죽을 거 같아서’란 제목의 수필집을 낸 분입니다. 제2 수필집을 준비하고 계신지 물으니 지금은 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습니다. 바쁜 식당일을 하면서도 전문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그분이 존경스럽게 보였습니다.
시상식이 열리는 영랑생가 옆 시문학파기념관에 도착한 후 기념관을 둘러보았습니다. 아홉분의 시인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김영랑, 박용철, 정지용, 정인보, 이하윤, 변영로, 김현구, 신석정, 허보. 특히 평생의 문우(文友)로 지냈던 영랑과 용아(박용철)의, 상대에 대한 평(評)이 눈에 띄었습니다. 용아의 영랑에 대한 고백입니다. “내가 시문학을 하게 된 것은 영랑 때문이여!” 다음은 용아에 대한 영랑의 고백입니다. “수리(數理)의 천재로 교사의 칭찬이 자자하던 때 나는 작은 악마와도 같이 그를 꼬여내어서는 들판으로 산길로 끝없이 헤매게 만들었다.”
시상식에서는 특별한 순서가 있었습니다. 부산의 협성종합건설 정철민 회장이 영랑상 운영위원회에 3년간 9천만원을 기탁하는 순서입니다. 평소에 영랑을 존경하고 영랑의 시를 좋아한 정 회장이 영랑기념사업회의 발전을 위해 거금을 쾌척한 것입니다. 기업인의 시 사랑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정 회장은 “영랑은 노벨문학상을 받을만한 작가였고 앞으로 정호승 같은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받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화순 운주사 와불을 노래한 정호승 시 ‘풍경 달다’를 암송했습니다. 기업인의 연설에서 낭독이 아닌 시암송을 듣게 되어 좋았습니다.
수상자인 박 시인은 수상소감에서 ''수상시집의 제목이 된 ‘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라는 구절은 어느 날 새벽에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글귀였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시상식 후 우리는 멀지 않은 해남에 있는 고정희 시인 생가로 향했습니다. 고 시인과는 ‘상한 영혼을 위하여’라는 시 암송으로 인연을 맺었지요. 오래 전부터 생가를 방문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뜻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고 시인의 생가는 담장가에 감나무가 있는 전형적인 농가였습니다. 열린 대문으로 들어서자 오른 쪽 담에 그의 시 몇 구절이 맞아주었습니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 쓸쓸함 또한 여백이었구나.”
그가 쓰던 서재에는 ‘창비’에서 발행된 여러 사회과학책들과 시집들이 있었습니다. 전시된 시 중에선 이미 알고 있던 ‘고백’이란 시가 눈에 띄었습니다. “너에게로 가는/ 그리움의 전깃줄에/ 나는/ 감/전/되/었/다.” 액자에 담긴 그의 좌우명 ‘고행, 묵상. 청빈’은 고 시인이 어떤 삶을 살고 갔는지 잘 보였주었습니다.
이번 호 암송추천시는 김규동 님의 ‘돌파구를 찾아서’입니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위로가 되는 시입니다.
돌파구를 찾아서/ 김규동 (1925 ~ 2011)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보면 보이리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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