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서울대 시학교수에서 정년퇴임한 오세영 시인에 대한 각계인사들의 추억담을 모아 놓은 책 ‘오세영, 한 시인의 아름다운 사람들’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요즘도 이따금 들춰보는 책입니다. 이 책 덕분에 시인에 대한 여러 모습을 알게 되어 좋았고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문인들의 글을 통해서 그분들의 진면목의 일부를 엿볼 수 있는 행운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이 책의 필자들은 주로 시인들이지만 의사와 법조인도 있고, 화가 탤런트 스님도 있습니다. 문인 중에는 고은, 이어령 등의 선배 문인과 이건청, 강은교, 오탁번 등의 동년배의 시인, 최동호, 이승하, 조정권 시인 같은 후배 문인, 방민호 서울대 교수, 나민애 씨 같은 제자의 글도 포함되어 있어 흥미롭습니다.
시에 관심을 가진 후 나는 그분의 강연도 여러 번 듣고, ‘원시’, ‘강물’, ‘양귀비꽃’ 같은 시도 애송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앞만 보고 바삐 걸어가는 우리 현대인들이 음미해봐야 할 시 ‘강물’의 전문(全文)입니다.
“무작정/ 앞만 보고 가지마라/ 절벽에 막힌 강물은/ 뒤로 돌아 전진한다// 조급히/ 서두르지 마라/ 폭포속의 격류도/ 소(沼)에선 쉴 줄을 안다// 무심한 강물이 영원에 이른다/ 텅빈 마음이 충만에 이른다.”
강원도 설악산 백담사 경내에 이 시비가 있다고 합니다. 이 시를 고른 서예가 김양동 교수는 “시비에 쓸 시는 첫째, 대표작에 속하는 명시여야 하고, 둘째, 적당한 자수(字數)에 일맞은 행간(行間)을 이루는 것이어야 하며, 셋째, 난해한 것보다 쉬우면서도 울림이 있는 시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암송시를 고를 때도 이런 기준에 따르면 무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은 시인은 오 시인의 호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더군요. “오세영 형의 호는 ‘석전(石田)’이라고 들었다. 돌밭이라. 얼핏 다른 호의 아취와는 다르다. 돌밭은 밭 중에도 하중하의 밭이다. 돌멩이나 자갈에 호미끝이 걸리기 일쑤이다. 그러니 이름으로도 팍팍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겠다. 그런데도 이런 호를 호젓이 지켜내고 있는 오형의 심사가 사뭇 지조적이기까지 하다.” 이러한 그의 우직스러운 면이, 하나도 쉽지 않을 시인, 평론가, 교수직 모두를 훌륭히 수행하게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는 내세에 대한, 시인과 박이도 교수와의 문답이 눈길을 끕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진 박 교수에게 시인이 묻습니다. “박 형은 기독교의 내세를 믿습니까?” 박 교수는 “믿습니다”라고 대답해놓고는 이 말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다가 나중에 스콜라 철학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안셀무스의 다음 말을 좋은 대답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믿기 위해 알려하지 않고, 알기 위해서 믿는다.”
시인에 대한 몇분의 평입니다. “평소에 선생은 과묵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논문발표회나 강연회, 토론회에 나가보면 얼마나 조리 있고 뛰어난 말솜씨를 갖고 계신가를 알 수 있다.”(김명인 시인) “오세영 시인은 삶을 시처럼 살고 계시는 분처럼 보인다. ”(김성곤 문학평론가)
이번 호 암송추천시는 서정홍 님의 ‘내가 가장 착해질 때’입니다. 흙을 만지며 농심을 가질 때 착해진다는 걸 알려줍니다.
내가 가장 착해질 때/서정홍 (1958 ~ )
이랑을 만들고
흙을 만지며
씨를 뿌릴 때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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