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암송칼럼/시암송칼럼(2020)

읽고 쓰기에 생애를 건 작가

日日新 2021. 5. 21. 11:06

문정희 시인의 글에 영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장군이 통치하는 나라에 최고의 배우가 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었던 남자가 있었답니다. 전신을 땀에 적셔가며 온몸으로 연습하는 배우의 연습장에 장군이 나타나 다음과 같이 칭찬했다고 합니다. “연습을 많이 했군!” 배우가 대답합니다. “생애를 걸었습니다!” 장군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들릴 듯 말 듯한 혼잣말을 내뱉습니다. “생애를 걸었다고? 그게 대가(大家)의 길이지!” 
  
이 얘기에 걸맞는 작가가 있습니다. 장석주 시인입니다. 최근 몇 개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서 단편적으로 알았던 그의 삶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일을 찾아 외지로 떠난 부모와 떨어져 초등 3학년 때까지 외할머니 집에서 지냅니다. 여섯 살 때 상여꾼의 슬픈 곡조를 듣고 삶과 죽음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됩니다. 글은 중학교 때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당시 유명한 학원문학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공부를 마치고 빨리 안정된 직장을 갖길 원한 부모의 뜻대로 상고에 진학하지만 상고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아 2학년 때 자퇴를 하게 됩니다. 
  
그후 그는 학벌 위주의 세상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시립도서관에서 종일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신간을 보기 위해서 종로의 대형 서점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그는 “밥 없이는 살아도 책 없이는 못 산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활자 중독자’라고도 합니다. 5~ 6년간의 지독한 독서 덕분에 그는 20대 중반에 유력 일간지 두 곳의 신춘문예에서 시와 평론으로 당선합니다.  
  
당선 후 그는 출판사에서 3년 일을 하고 독립합니다. 독립한 출판사에서 성공한 출판인으로 살던 중 그가 펴낸 마광수 교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의 외설 시비에 걸려 두 달간 감옥살이를 합니다. 그는 출판업을 접고 정말 자기가 원하는 ‘쓰고 읽기의 삶’을 살고자 경기도 안성으로 내려가 시골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곳에서 그는 노자 장자 철학에 심취합니다. 무위자연(無爲自然), 무용지대용(無用之大用)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의 ‘단순하고 느리게 고요히’란 시에 ‘느린 삶’에 대한 그의 동경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땅거미 내릴 무렵/ 광대한 저수지 건너편/ 외딴 함석 지붕 밑/ 굴뚝에서 빠져나온 연기가/ 흩어진다// 단순하고/ 느리게/ 고요히// 오, 저것이야!/ 아직 내가 살아보지 못한 느림!”
  
그를 유명인으로 만든 ‘대추 한 알’이 있습니다. 그가 심은 대추나무에 매달린 대추 몇 개를 보고 감동해서 쓴 시라고 합니다. 그는 책에 대해 “가장 싼 비용으로, 가장 빠르게, 가장 편하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독서를 ‘저자와의 독대(獨對)’라고 정의합니다. 지독한 애서가(愛書家)답게 “책 사는데 돈 아끼지 마라”가 가훈이라고 합니다. 3만 권 이상의 장서를 가진 그는 70권 이상의 책을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노년의 꿈도 아름답습니다. 제주도에 살면서 ‘여행자 도서관’을 만들어 지금의 자기를 있게 한 독자들에게 보답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이번 호 암송추천시는 김용재 님의 ‘시인의 마음’입니다. 택시값을 아껴 시집을 사는 마음이 귀해 보입니다.


시인의 마음 / 김용재 (1944 ~  )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타고 귀가하려다
그 돈으로
터미널 서점에 들러
시집을 한 권 샀다
잘했다.

 

무등일보 격주간지 아트플러스에 연재한 칼럼 '문길섭의 행복한 시암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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