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암송칼럼/시암송칼럼(2020)

어느 문우(文友) 이야기

日日新 2021. 6. 12. 15:22

시암송본부에서 만든 시카드 덕분에 알게 된 심순영 선생은 지난 해 초등학교 보건교사에서 정년퇴임하고 다시 방과 후 교사로 일하고 있는 분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자신과 가정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는 그는 성경 암송을 좋아해서 지금까지 구약 시편을 중심으로 300절 이상을 외웠다고 합니다. 올들어 영어 성구를 외우기 시작한 나에게 그분의 암송 경험이 좋은 자극과 도움이 됩니다.

 

지난 5월엔 내게 제자 얘기를 보내왔습니다. “어제는 저의 유일한 제자 김현경(가명)이 제가 근무하는 곳으로 찾아왔습니다. 붉게 핀 작약 세 송이와 마카롱 한 상자를 들고요. 눈물이 왈칵 나왔습니다. 현경이는 초등 6학년 때 소아당뇨에 걸려서 지금까지 투병생활을 하는데 현재 신장투석을 하면서 D대학에서 박사과정 중에 있답니다. 어찌나 대견한지요... 그 제자가 학위를 마치고 강단에 서는 날, 제가 꽃을 사들고 찾아가는 꿈을 꾸어봅니다. 저는 현경이에게 정호승의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라는 시의 일부를 편지에 적어서 건넸지요. ‘...희망만 있는 희망은 희망이 아니다. 절망을 아는 희망만이 진짜 희망이다. 너는 진짜 희망을 소유한 사람이다...’ 라구요.''

 

아파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고입 대입 검정고시를 통과하여 대학에 갔다는 현경이는 자기에게 스승은 보건선생님뿐이라고 하면서 해마다 찾아온다고 합니다. 사제간의 정()이 희미해진 요즈음이라 두 사람의 정이 유난히 고와보였습니다.

 

전부터 시를 조금씩 써오던 심 선생은 어느 날 내게 어머니에 관한 시 한 편을 보내주었는데 가슴이 찡~ 했습니다. 제목은 꽃으로 받은 편지입니다.

진달래공원(논산에 있는 엄마 산소, 필자 )으로 이사 온 지 어느덧 삼년이 지났구나/ 큰애야 친정없는 동생들에게 엄마가 되어 주니 고맙다/ 내가 수년간 키우던 문주란꽃이 올해도 꽃을 피웠을 게야/ 한글 모르는 에미가 쓴 안부편지로 알거라// (중략) 혼자 알아서 야무지게 잘 산다는 핑계로/ 셋째야 네가 남모를 아픔을 연이어 겪을 때 /에미가 찾아가 끌어안고 울어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너의 그늘에 핀 함박꽃을 예쁘다고만 말해서 미안하구나// 일 년 내내 꽃을 피우는 꽃기린은 막내가 가져갔다지/ 엄마가 아침저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일상편지로 알거라/ 베란다에 앉아 나비처럼 피어나는 꽃기린을 손질하던/ 엄마의 사랑을 너도 나비처럼 훨훨 피워보거라시인이 화자인 엄마가 되어 도란도란 건네는 얘기에 저 세상에서도 자식을 품고 계실 엄마의 사랑이 물씬 느껴졌습니다.

 

올해 언니가 칠순을, 막내동생은 회갑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심 선생은 학교에서 상을 주는 일에 익숙했던지 세 자매에게 금일봉과 함께 감사패를 증정했다고 합니다. 그 중 하나입니다. “심자매 막내딸 심남순. 그대는 심자매의 막내로 태어나 회갑을 맞이하는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온 사이다 아이콘으로서 속 시원한 촌철살인의 언어를 구사하며 맏며느리로서 품위를 지키고 마음 씀씀이가 어질어 언니들에게 잘 대하고 빈틈을 채워주니 그 예쁜 마음에 사랑과 감사를 담아 드립니다.”

 

독실한 신앙인으로, 좋은 엄마로, 어진 아내와 자매로, 존경 받는 스승으로, 뛰어난 예비 시인으로 살아가는 문우께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번 호 암송 추천시는 김은희 님의 디카 시() ‘나의 빛입니다.

 

나의 빛/

김은희 (1955 ~ )

 

꽃동네에서는

서로 비교하지 않으며

시샘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빛깔만으로

온전히 빛난다

 

무등일보 격주간지 아트플러스에 연재한 칼럼 '문길섭의 행복한 시암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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