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송 추천시

개 - 유자효

日日新 2011. 12. 9. 18:41

개 - 유자효

 

의정부에서 열린 전국 시 낭송 경연대회 경기도 예선

눈먼 여인이 누런 개의 인도를 받으며 건물로 들어섰다

대회장의 밖에 개는 공손하게 앉았다

여인은 화장실로 가서 짊어지고 온 가방을 풀어 한복으로 갈아 입었다

여인의 차례는 마지막이었다

몇 번을 맨발로 연습한 대회장 바닥의 감각을

맨발로 확인하며 단상에 올랐다

아무도 그녀가 눈이 먼 줄 몰랐다

여인은 창과 함께 시를 낭송했다

낭송은 다소 서툴렀지만 절절한 한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여인의 차례가 끝나고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 입는 동안

개는 눈을 꿈벅이며 구석에 묵묵히 엎드려 있었다

누가 바라보면 개도 그를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어진 눈

어진 눈이었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마치 어느 착한 사람이 개의 형상을 하고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듯했다

여인은 장려상을 타고

개는 다시 여인을 인도해 건널목을 건넜다

아무도 그 개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묵묵히 엎드려 있던 누런 등과

천천히 꿈벅이던 어진 눈

이름없는 무수한 성자 중의 하나가

개가 되어 여인을 인도하고 있었다

저 흔한 우리 누렁이 중의 하나가 되어

(2004 ‘시와 사상’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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