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과의 만남

오월 - 피천득

日日新 2010. 4. 30. 21:29

  오월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이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득료애정통고)

失了愛情痛苦(실료애정통고)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피천득, 수필가 영문학자 시인) <수필, 범우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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