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일화 - 박두진 시인
아마 이 시인만큼 사람의 비린내가 나지 않는 이가 없을 게다.
언젠가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집을 찾아간 그날 소설가이며 대한민국 예술원장인 박종화 선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예술원에서 시인을 예술원 회원으로 추대했으니 곧 집으로 통지가 갈 것이라는 소식을 미리 전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시인은 이를 정식으로 거절했다. 그는 그날도 그렇고 아주 오래전 예총 산하 문인협회에 회원 가입을 권할 때도 거절했다고 했다. 알고 보니 이 시인은 그때까지도 문인이면 으레 가입하는 문학단체에도 가입하질 않았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청와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의 여비서 전화였다. 육 여사가 시인에게서 문학 공부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 요청 역시 거절했다. 그런가 하면 5.16 군사혁명이 막 일어났을 때, 그는 그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월간지 <사상계> 제 1면에 <잔나비가 춤을 춘다>는 제목의 시를 발표했다. 여기서 잔나비는 바로 혁명군을 가리키는 것. 때가 때인 만큼 바짝 몸을 낮추고 숨도 제대로 못 쉬는 혁명 초기의 무시무시한 공포 분위기 속에서, 이 시인은 감히 정면으로 혁명을 거부하고 비판하는 시를 쓴 것이다. 이때부터 이 시인은 요주의 인물로 찍혀 감시의 대상이 되었고 악명 높은 남산의 그 집까지 드나들게 되었다.
박두진 시인은 이렇게 깨끗하고 올곧게 세상을 살았다. 예술원 회원 추대를 거절한 것은 분명 대단한 일임에도, 시인은 그러한 본인의 행동을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는 그와 같은 무심(無心)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가 받은 여러 제의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에게는 물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그리고 감히 달걀로 바위를 치듯 거대한 세력에 맞선 그 용기는 또 얼마나 대단한가. 그러나 정작 본인은 전혀 그것을 의식조차 않는, 무심을 실천한 진정한 지식인이었다. (육명심,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