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일화 - 박용래 시인
박용래 시인은 잘 운다. 술자리에서 마주할 때면 그는 항상 운다. 누구하고 만나서 술 한잔만 들어갔다 하면 어김없이 훌쩍훌쩍 운다. 눈물을 쪼르륵 흘리면서 운다. 그의 울음은 가늘고 애잔하다. 어떤 때는 그 애잔한 울음이 술자리를 뜬 이후까지 마음에 남아 길게 메아리치기도 한다. 그는 비애(悲哀)의 사람이다. 천상(天上)에서 이 세상에 유배된 시(詩)의 천사인지도 모른다. 그는 울면서 언제나 똑같은 말을 한다. “세상은 시인을 아껴줘야 해. 시인이란 참으로 고귀한 존재니까 당연히 위해줘야 해.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시인을 소홀히 하고 몰라보니 참으로 슬픈 일이야.”
그가 그렇게 눈물 많고 한(恨)이 많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이렇게 믿고 있다. 시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라고 말이다. 이 같은 소명의식이 머리에 굳게 박혀 있어선지 어떤 때는 정말 박 시인이 시의 천사처럼 느껴진다.
또한 그는 고귀한 시인은 좋은 시를 열심히 쓸 일이지 세상사 잡스러운 일 따위에는 끼어들지 말아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언젠가 충남 온양에서 문인들의 세미나가 있었다. 이 시인도 세미나에 참석했다. 그런데 행사 도중에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한창 세미나가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 시인이 술을 잔뜩 마시고는 만취한 상태로 행사장에 들어왔다. 그는 곧장 단상으로 뛰어올라가 마이크를 잡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놈들아! 문학한다는 놈들이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당장 때려치우지 못해! 글쟁이들이 글이나 열심히 쓸 것이지 이게 다 뭣하는 수작들이야!”
다른 행사장에서 이런 돌발사태가 생겼다면 힘센 장정 몇 명이 단상에 올라가 끌어내면 그만이었겠으나 그 자리는 문인들의 행사였는지라 많은 참석자들이 박용래 시인의 애교 있는 거사에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그 바람에 소란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날 그 일로 인해 뒤풀이 자리가 본행사보다 더 흥겹고 신이 났다. 이 시인은 또 시를 쓰는 고귀한 사람은 남들에게 허점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단정한 모습을 보이려고 한다. 그러나 평생 돈 한 푼 변변히 못버는 가난뱅이 시인의 본색이 어찌 완벽하게 다 가려질 수 있으랴! (육명심,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