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씨앗
지난해 늦가을과 초겨울에 내가 잘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코스모스 씨앗을 세 봉지나 받아둔 일이다. 봉지 속의 씨앗을 다 풀어내면 한 됫박은 될 것이다. 863번 지방도로(이 길을 곧장 가면 여수 바다에 이른다)와 순천만 갈대밭 주위에 핀 코스모스 씨앗들을 틈나는대로 받았다.
코스모스 씨앗을 열심히 받고 있노라면 마음 안에 유랑극단의 나팔 소리가 들린다. 물 맑은 샘물이 찰랑거리기도 하고, 하얗게 소름 마르는 길이 떠오르기도 한다.
올봄에 나는 그 씨앗들을 내가 매일 오르는 한 언덕 주위에 뿌렸고, 가을이 오자 언덕 주위에 코스모스 꽃들이 피었다. 바람이 불면 언덕 양쪽에 유랑극단의 깃발이 펄럭인다. (곽재구, 시인) <별밭에서 지상의 시를 읽다, 이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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