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과의 만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

日日新 2009. 8. 19. 21:36

존경하고 사랑하는 당신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 1982년 7월 27일


오랫동안 목마르게 기다리던 비가 와서 여기 청주지방도 간신히 해갈이 된 것 같습니다. 금년의 더위는 참으로 종래 경험하지 못한 것으로 나같이 더위를 타지 않는 사람도 큰 고통을 느꼈습니다. 당신을 생각하면서 얼마나 못견디어 할까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도 1개월은 더 더울 것이니 당신과 가족 모두가 건강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내가 여기 청주교도소로 와서 이달말로써 만 1년 반이 됩니다. 그간 생활에서의 번민과 고독과 한(恨)을 무어라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절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곤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 내 인생의 전과정을 통틀어서 신앙상으로나 지적 발전에서나 또 인격 형성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기도 되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그간 수많은 좌절과 슬픔과 걱정의 순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러한 긍정적인 면을 느낄 수 있는 것을 무한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나의 일생은 한(恨)의 일생이었습니다. 얼마나 수많은 한(恨)이 굽이굽이에 맺힌 인생이었던가요? 한(恨) 속에 슬퍼하고, 되씹고, 딛고 일어서고 하는 생의 연속이었습니다. 고난 속에서 배우고, 가능성을 발견하고, 잡초같이 자라는 것이 인생이며 하느님의 섭리라는 것을 되새겨 봅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그간 거쳐온 대결의 생활 속에서도 누구 한 사람 길에서 만난다 하더라도 외면해야 할 사람이 없으며, 누구 하나 용서하지 못할 정도로 증오하는 사람이 없음을 감사해 합니다.


한가지 슬픈 것은 나의 환경과 조건 탓으로 사랑하는 벗들로부터 소외되는 생활을 강요당해 온 사실입니다.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의 하나는 많은 분들이 기억 속에서 나를 위해 염려하고 기도해 주신 점입니다. 어찌 큰 위로가 아니겠습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 <김대중 옥중서신, 새빛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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