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암송칼럼(2008-14)

시암송 타임

日日新 2009. 7. 11. 22:10

시암송 타임


지난 달부터 맡고 있는 ‘어르신 시낭송반’이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다행으로 생각된다. 처음엔 여러 유형의 시만 소개하다가 조금 지나선 시암송의 동기부여를 드리기 위해 ‘명사들과 시암송회원의 시사랑 고백’을 소개하고 있다. 블로그에 연재하고 있는 ‘시암송 이야기’도 한 편씩 나누고 있다. 어르신들께 웃음을 드리기 위해  수수께끼 몇 개와 유머 하나를 준비해서 들려드리기도 한다. 내 서툰 얘기가 재밌다고 까르르 웃어주시는 어르신들의 순한 마음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시낭송반에선 매 주 한 편씩 함께 시를 외우고 있다. 2주 전부턴 강의가 끝날 무렵 ‘시암송 타임’을 갖고 있다. 앞에 나와서 어떤 시든 암송을 해보시도록 권한다. 몇 분이 ‘공동으로 외운 시’가 아닌 다른 시를 외시는 걸 듣고 무척 놀랐다. 60대의 할머니는 임여자의 ‘봄맞이꽃’을, 광주 YWCA 명예이사로 계시는 70대의 할머니는 유안진의 ‘키’를 암송하셨다. 시암송의 권유를 순하게, 진지하게 받아들여 시낭송반에서 소개해드린 시를 골라 외워 읊으시는 모습을 지켜보며 얼마나 기쁘던지! ‘내가 이런 귀한 열매를 얻다니!’ ‘내가 하는 시암송운동이 의미가 있구나!’ -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나중에 등록하신 할머니는 김소월의 ‘산유화’와 이정록의 ‘의자’를 거의 막힘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외우셨다. 70대의 할아버지가 내가 아직 외우지 못한, 긴 시에 속하는 노천명의 ‘푸른 오월’을 술술 암송하시는 걸 듣고 놀라기도 했다. 취미로 동양화를 하신다는 할머니는 첫 시간엔 노천명의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를, 다음 시간엔 한하운의 시를 울먹이며 외우셨다. 젊게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은 김소월의 ‘초혼’을 격정적으로 읊으셨다 (이분은 강의가 끝나고 내게 다가오셔서 이 시간이 너무 좋다고 하며, 자기는 공부는 많이 못했지만 시는 애인처럼 좋아한다고 하셨다). 늘 웃는 표정의 간호장교 출신 한 분은 고정희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를 감동적으로 읊어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느 기간 전문적인 시낭송 훈련도 받은 분이셨다). 앞으로 오랫동안, 시를 좋아하는 분들과 시 얘기를 나누며 함께 시암송을 즐기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을 생각하니 무척 행복하다. 메마른 삶에서 더 많은 이들이 시암송의 기쁨을 누리며 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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