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길을 걷고 있으면 아무 생각도 할 필요가 없다. 느끼기만 하면 된다. 요샌 한창 땅기운이 왕성할 때다. 걷잡을 수 없는 힘으로 산천초목을 통해 지상으로 분출하고 있다. 흙길을 걷고 있으면 나무만큼은 아니라도 풀만큼은 못하더라도 그 생명력의 미소(微少)한 부분이나마 나에게도 미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 힘이 비록 나에게 이르러 잎이나 꽃이 되어 피어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이 풍진 세상을 참고 견딜 수 있는 힘이 된다면 어찌 미소하다고만 할 수 있겠는가. 땅기운과의 이런 편안한 친화감에 힘입어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하게 된다. 이렇게 당당하게 걸을 수 있는 기쁨을 누리는 동안만 살게 하소서, 라고. 허나 이렇게 엄청난 욕심이 어찌 기도가 되겠는가. 응석이지. (박완서, 소설가) <호미,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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