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 허승호
“착한 아이는 쓰일 데 많아
하느님이 먼저 데려가신단다.”
두 살 터울 아우의 죽음을 울던
여섯 살짜리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주 잃은 아픔을
눈물 삼킨 미소로 달래주시던 할아버지
귀한 손주 나쁜 물 들까봐
골목 골목을 “어흠, 어흠”누비시며
동네 개구쟁이들을 겁주시던 할아버지
골방에서 고기 몇 점 구워주시며
“내 손주 빨리 크거라”
“내 손주 훌륭한 사람 되거라”
유난히 희던 내 얼굴 어루만져주시고
당신은 끝내 침만 삼키시던 할아버지
회갑 한 해 남기시던 어느 날
백 여 개 만장(輓章)을 거느리시고
손 놓기 설워하시던 손주를
마지막으로 상여에 태워주시고
고개 너머 저승으로 가버리신 할아버지
너르고 따뜻하시던 할아버지 등이
예순 훌쩍 넘긴 손주 가슴에
지금도 살아남아
들꽃, 산꽃, 풀꽃을 그리움으로 엮어
할아버지 계신 푸른 하늘을 향해
날마다 다리를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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