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송 추천시

목계리에서 - 박라연

日日新 2011. 9. 20. 20:43

 

 

목계리에서 - 박라연

 

 

가도가도 산뿐이다가

겨우 몇 평의 감자밭 옥수수밭이 보이면

그 둘레의 산들이 먼저 우쭐댄다

제 몸을 가득 채운 것들을 신의 흔적이다,

라고 믿고 살지만

두 눈으로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사람의 흔적인 옥수수의 흔들림 감자꽃 향기는

왕산이 본 것 중 가장 귀한 것이다

 

가도가도 산뿐이다가

차 파는 오두막집이 보인다

그 주인은 이미 산의 일부이면서

바람의 일부일 것이다

적막 속 어딘가에 집 한 채만 보여도

왕산은 그 기(氣)를 바꾼다

수천 평의 산을 거뜬히 머겨 살리는 것은

한 됫박쯤 될까 말까 한

몇 사람의 숨소리일 것이다

(문학사상, 2001. 10월호)

'암송 추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짝 붙어서다 - 김사인  (0) 2011.09.26
좋은 시  (0) 2011.09.23
눈이 너무 작아서 - 유안진  (0) 2011.09.19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 순례 11 (오규원)  (0) 2011.09.16
복 - 강명미  (0) 2011.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