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광자 선생은 40여 년간 패션디자이너의 외길을 걸어온 분이다. 내 둘째 누나이기도 하다. ‘廣’이란 이름처럼 마음이 넓고 스케일이 크고 이웃에게 끊임없이 주기를 좋아한다.
내가 시골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밥맛이 없어 밥을 먹지 않는 걸 옆에서 보던 누나가 밥을 비벼 그릇이 다 빌 때까지 내게 떠먹여준 일이 오래 잊히지 않는다. 고교 시절엔 1년간 바이올린 렛슨비를 대주고, 대학생이 됐을 땐 4년간의 학비와 생활비를 맡아주었다. 프랑스에서 귀국한 후 적당한 일자리가 없을 때 지금의 아트홀에서 일하게 해주었다.
2년 전 (2006년 9월) 드맹 카페에서 누나와 차를 마시던 중, 난 오래 전부터 품어왔던 시암송운동의 꿈을 조심스레 꺼냈다. “시암송을 해보니 정말 행복해서 이웃과도 나누면 좋겠어요.” 나의 뜻밖의 제안에 평소에도 내 시암송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준 누나가 흔쾌히 찬성의 뜻을 보여주었다. “그래, 참 좋은 생각이다. 해보자”고 하며 후원을 약속했다. 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누나가 내 소중한 꿈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그후 함께 시암송국민운동본부를 설립하고 누나의 도움으로 시카드를 만들어 보급하면서 시암송운동이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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