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송 추천시

八院 (백석)

日日新 2009. 1. 7. 20:28
 

팔원(八院) 


- 백석



차디찬 아침인데

묘향산행 승합 자동차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자성(慈城)으로 간다고 하는데

자성은 예서 삼백오십 리 묘향산 백오십 리

묘향산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새하얗게 얼은 자동차 유리창 밖에

내지인(內地人) 주재소장 같은 어른과 어린아이 둘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차 안 한 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몇 해고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 팔원: 묘향산 부근에 있는 작은 산촌 지명

  내지인: 일본 본토인이라는 뜻. 일본인이 스스로 일컫던 말

  내임: ‘요금’이라는 뜻의 일본말

'암송 추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헐거워짐에 대하여 (박상천)  (0) 2009.01.09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모습 (박노해)  (0) 2009.01.08
冬安居 (고재종)   (0) 2009.01.06
별을 쳐다보며 (노천명)  (0) 2009.01.05
키 (유안진)  (0) 2009.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