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을 내려 주시는구나
- 성찬경
은총을 내려 주시는구나.
야속하다 싶을 만큼 묘하게
표 안 나게 내려 주시는구나.
슬쩍 떠보시고 얼마 있다가
이슬을 주실 때도 있고
만나를 주실 때도 있고
밤중에
한밤중에
잠 못 이루게 한 다음
귀한 구절 하나를 한 가닥 빛처럼
내려보내 주실 때도 있다.
무조건 무조건 애걸했더니
이 불쌍한 꼴이 눈에 띄신 모양이다.
얻어맞아도 얻어맞아도
그저 고맙다는 시늉만을 했더니 말이다.
시늉이건 참이건
느긋하게건 절대절명에서건
즉시 속속들이 다 아신다. 다 아신다.
그러니 오히려 안심이다.
벌거벗고 빌면 그만이다.
은총을 내려 주시는구나.
* 성찬경 / 1930년 충남 예산 출생. 1956년『문학예술』誌를 통해서 조지훈 선생의 추천에 의해 시 「미열」,「궁(宮)」,「프리슴」으로 데뷔. 1964년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를 거쳐 동 대학원 영문과 졸업, 문학 석사 학위를 받음. 1966년 12월부터 현재까지 4회에 걸쳐 성찬경의 「말예술」공연.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교수. 시집 『화형둔주곡』(정음사. 1966), 『반투명』(서문당, 1984), 『무극』(성균관대 출판부, 1995) 『나의 별아 너 지금 어디에 있니?』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