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들의 시사랑

유지나 님

日日新 2010. 2. 10. 20:25

명사의 시사랑 고백 


어느 때부터인가 시를 읽는 일이 내 일상으로부터 사라졌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계이다. 시를 읽는다는 일, 시를 내 일상의 한 부분으로 만든다는 일이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 더 솔직한 변명일 것이다.


그러다가 삼 년 전인가. <일 포스티노>라는 이탈리아 영화를 보면서 삶의 용기와 위안을 주는 시의 놀라운 힘에 빠져 들어갔다. 사회혁명가이자 시인인 파블로 네루다가 이탈리아 해변도시로 망명해서 순진하고 무식한 우편배달부와 시를 통해 나누는 교감은 대단했다. 시가 사상이나 감정의 표현이나 말놀이가 아니라 절절한 삶의 체험을 나누고 연장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왜 나는 잊고 있었던 것일까.


이 영화를 보고 돌아온 날 나는 먼지 낀 시집들을 꺼내 하나씩 읽어 보았다. 강은교, 최승자, 김수영, 김춘수, 발레리, 오든, 엘리엇, 휘트먼, 랭보, 보들레르, 말라르메... 간혹 줄이 쳐 있는 부분은 지난 날 처절했던 내 마음의 상태에 관한 기록처럼 보였다. 그래, 나도 한때 시를 열심히 읽었는데, 왜 언제부터인가 시라는 것을 읽기를 멈춘 것일까. 일상의 분주함에 몰락되면서부터일까. 대체 그게 언제쯤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질문은 나 자신을 세속 도시의 분주함에 함몰된 가련한 몰골로 여지없이 드러내 준다. 그후 나는 시를 대할 기회가 있으면 꼼꼼히 읽었던 과거의 습관을 다소 회복하게 되었다. (유지나, 영화평론가)

'명사들의 시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영미 님  (0) 2010.03.06
황인원 님  (0) 2010.02.22
송수권 님  (0) 2010.01.27
전원범 님  (0) 2010.01.20
반경환 님  (0) 2010.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