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과의 만남

무형의 선물

日日新 2009. 11. 30. 19:37

 무형의 선물


걷지 못하는 사람이 창 밖으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내다보며 쓴 ‘아, 나도 저렇게 종종종종종 걸어 보았으면...’ 하는 수기를 보았다. 여기에서 나는 두 다리를 대지에 딛고 선, 그리고 걸어 다니고 있는 행복을 생각했다. 그러자 두 눈으로 보고, 향기를 대하며,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할 수 있는 사실이 축복으로 새삼스럽게 다가와서 내 가슴을 한동안 찡하게 해주었다. 숨쉬게 해주는 산소, 해와 달, 구름과 바람과 비와... 심지어 아침에 만날 수 있는 이슬 한 방울까지 얼마나 산뜻한 선물인가.


우리는 선물을 눈에 보이는 유형의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보이지 않는, 아니 보여도 알아보지 못하는 선물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의 저 푸른 가을 하늘도. 최근 내가 받은 무형의 선물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지나는 길에 내 사무실에 들렀다는 친구가 “나한테서 무슨 향기 안 나?”하고 물었다. 나는 그의 옷 가까이 코를 갖다 댔다. 풀내음 같기도 하고, 꽃향기 같기도 한 내음이 다소 느껴지긴 했다. 친구가 씩 웃으며 말했다. “꽃집에 들러서 난향기를 묻혀 왔단 말이야.”


가르멜 봉쇄수녀원에 계시는 수녀님이 어렵게 전화를 걸어왔다. “보내 주신 책 고맙습니다. 저는 드릴 게 없어서 어쩌지요? 따님 이름을 알려 주시면 제가 기도해 드릴 수는 있는데...” 수화기로도 수줍음이 느껴지는 이 청빈한 선물보다 귀한 선물이 또 어디 있을까.


어제 만난 동화작가. 그녀는 “빈손으로 와서 쑥스럽네요”하다가는 내 안경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손수건을 꺼내서 호호 입김까지 불어 가며 어롱을 말끔히 닦아 놓고 갔다. 이런 따뜻한 선물이 이 세상을 살맛나게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채봉, 동화작가) <눈을 감고 보는 길,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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