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아트플러스 詩 칼럼
시를 잊은 그대에게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몇 년 전에 출간된 한양대 정재찬 교수 저서의 제목입니다. 정 교수는 총장의 부탁으로 시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공대생을 위한 시 강의를 하게 되었고, 그 강의 내용을 모아 책으로 펴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 교수는 책을 출간한 동기를 머리말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제 감히, 대학 입시 때문에 지금도 억지로 시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든, 시를 향유하는 자리에서 소외된 노동하는 청년이든, 심야 라디오에 귀 기울이며 시를 읊곤 하던 한때의 문학소녀든, 시라면 짐짓 모르쇠요 겉으로는 내 나이가 어떠냐 하면서도 속으로는 눈물 훔치는 중년의 아버지든, 아니 시라고는 당최 가까이 해 본 적 없는 그 누구든, 시를 잊은 이 땅의 모든 그대와 나누고파 이렇게 책으로 펴냅니다.”
자칫 관심을 끌지 못할 것 같던 강의는 정 교수의 특별한 정성과 노력으로 수강생들의 폭발적 좋은 반응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음은 몇 학생의 수강 소감입니다. “한 편의 공연 예술을 보는 듯한 강의였습니다. 황홀했고, 또 정말 가슴 설렜습니다.”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시가 가깝게 느껴집니다. 영화, 음악과 함께 시를 감상하고 시인의 삶에 시를 비추어 보는 모든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독특하고 신선한 교수법을 통해 멀게만 느껴지는 시를 재미있고 유익한 수업으로 이끌어 낸 것에 놀랐습니다.”
이런 놀라운 반응을 대하고 정 교수의 교수법에 관심을 갖던 중, 지난 겨울 광주 동구아카데미에서 실제로 그분의 강의를 듣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그날의 강의는 책을 이루는 열두 꼭지 중에서 두 꼭지(별이 빛나던 밤에, 그대 등 뒤의 사랑)만 다뤘습니다.
나는 그의 풍부한 전문지식과 구수한 입담이 빚어낸 강의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참석자들은 중년 이후의 노년층이 많았는데 시와 관련된 음악(동요, 가곡, 가요 등), 영화, 그림, 무용까지 곁들인 모노드라마 같은 강의에 오 분이 멀다하고 즐거움과 공감의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다음은 첫 꼭지 ‘별이 빛나던 밤에’에 동원된 자료들입니다. 그랜드 캐년의 무지개, 그가 ‘우주의 서사시’로 표현한 밤하늘의 별들, 노래 ‘반짝 반짝 작은 별’ (정 교수는 이 노래를 부르며 폭 댄스의 동작을 보여 주었습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소행성 B – 612, 황순원의 소설 ‘별’, 이병기의 시조 ‘별’, 알퐁스 도데의 별(les etoiles, 원문의 뜻은 ‘별들’),
김광섭의 시 ‘저녁에’, 이 시를 모티브 삼아 그린 김환기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가수 윤형주가 부른 ‘두 개의 작은 별’,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영화 ‘라디오 스타’, 이성선의 ‘사랑하는 별 하나’,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에’, 고흐를 위해 바친 돈 매클레인의 곡 ‘빈센트’ 등.
한 꼭지의 강의를 위해 그가 동원한 이 많은 자료를 대하며 한 편의 시는 입체적으로 다가가야 풍부하고 즐거운 감상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호 암송추천시는 유안진 님의 신명입니다. 고통스럽더라도 팽이처럼 신명나게 살아보는 한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신명/ 유안진(1941 ~ )
매를 맞아야/ 살아나는가/ 아프고 아파야/ 꿈이 피는 목숨인가// 못 견딜 고통만을/ 최선의 양식 삼아/ 팽이 처럼/ 팽이 처럼/ 나는 사느니/ 때리고 치고/ 치고 때려라/ 신명나게 춤 한 번/추어 보리라
(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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