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아트플러스 詩 칼럼
임철우 작가와의 만남
소설가 임철우 씨는 오래 전부터 내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내 나이 또래의 그가 최연소자로 이상문학상을 받은 것이 놀라웠고, 내가 애송하는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에서 모티브를 얻어 ‘사평역’이란 단편소설을 쓴 것도 이채로웠습니다. “다른 작품을 쓰기 전에 5•18을 소재로 소설을 쓴 건 광주 출신 작가로서 살아남은 자로서의 부채감 때문이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달 초 ‘굿모닝 양림’이란 행사에 초대되어 온 그의 강연을 양림동 주민센터 공연장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연단에 선 그분의 인상은 담백하고 진지하게 보였습니다.
그는 문학강연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하면서 어린 시절 광주 양림동에서 살았던 추억부터 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첫 어두운 기억으로 초등 3, 4학년 때 제중병원 (지금의 기독병원)에 폐결핵 약을 타러 갔던 걸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에야 폐결핵에서 졸업했다는 그는 병으로 인한 두려움 속에서 죽음을 많이 생각했다고 하였습니다. 김동리 선생이 문예창작 강의 첫 시간에 했다는 “성경을 많이 읽고, 죽음을 생각하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학교에 적응을 못했던 그는 여러 번 무단결석을 해서 어머니의 애를 먹였다고 합니다. 그는 학교에 가는 대신 종종 기차를 타고 전라도 여러 곳을 혼자서 여행을 했다고 합니다. 집으로 퇴학통지서가 날아올 때면 어머니가 자신을 교무실로 데리고 가기도 하셨다는데, 선생님을 만난 후 운동장을 터덜터덜 걸어가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는군요.
그는 가난으로 아이스께끼를 팔아본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전기 시설이 없을 때라 아이스께끼가 녹아 제대로 팔아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의 병과 가난과 배고픔을 통해서 약자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시장터에서 좌판을 벌여놓고 지나가는 이들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시선에서, ‘사지는 않아도 한번 쳐다만봐줘도 좋겠다’는 할머니의 마음을 읽은 작가를 대하면서, 저런 작가라면 마음을 기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의 작품들을 공들여 읽고 싶어졌습니다.
그는 “문학 속에서 수많은 인물을 만나고, 다른 인물들의 삶과 내면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하면서 좋은 소설을 많이 읽을 것을 권했습니다.
질문 시간에 나는 ‘사평역’에서란 작품의 창작 배경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는 시를 가지고 同名의 소설을 쓴 경우는 문학사에 드문 경우라 하면서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 첫줄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에 감동받아 수없이 그 시를 외웠고 체화된 그 시 덕분에 며칠만에 소설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얘기에서 특히 반가웠던 것은 그가 시 외우기를 좋아한다는 고백이었습니다(50편쯤 암송). 그가 시암송을 즐기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암송되는 시는 시공을 초월해서(숨막힐 듯한 지옥철 안에서도!) 자신의 감성을 일깨워주고 아름다운 상상의 세계로 인도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호 암송추천시는 박신규 님의 ‘그믐달’입니다. 그믐달에 대한 은유의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 보게 합니다.
그믐달/ 박신규 (1972 ~ )
우주로 열렸다 닫히는 문
그대의 눈
(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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