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암송칼럼/시암송칼럼(2021)

목월을 향한 혜산(兮山)의 추도

日日新 2021. 5. 30. 14:21

 ‘문장’지를 통해 함께 정지용 시인의 추천을 받고 청록파 시인으로 청록집을 펴냈던 목월 시인(대표작은 나그네, 산도화, 청노루, 가정, 하관, 어머니의 언더라인 등) 이 60대 초에 세상을 떠났을 때 혜산 박두진 시인(대표작은 해, 청산도, 너는 어서 오너라, 하늘 등)이 목월을 회고하며 쓴 추도사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이 글에선 기독인으로서 혜산의 신앙관도 엿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중요한 문학 자료인 추도사를 지면을 고려하여 조금 줄이면서 소개합니다. 이 글에서 목월의 인간과 문학, 그리고 두 시인의 우정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목월 형! 우리는 형과의 마지막 작별을 고하고자 여기에 모였습니다. 세상의 사랑하던 모든 것, 집착하고 추구하던 모든 것을 버리고 한마디 말도 없이 형은 훌훌히 가시지만, 그러나 형을 보내는 우리들의 마음은 너무나 아프고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나고 죽음이 오직 하나님의 무궁하신 섭리라고는 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섭리를 감당하기가 벅차고 인간의 정으로 너무나 슬픕니다. (중략)
  
목월 형의 지금까지의 한 시인으로서의 빛나는 업적은 이미 이루어 놓으신 것만으로도 희귀한 것이며 매우 훌륭하고 독자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청록집’, ‘산도화’로 대표되는 가장 향토적이며 한국적인 세련된 율조의 초기 시, 생활과 인간적인 주제로 진폭을 넓혀 한층 더 기법의 밀도를 보였던 ‘난 기타’, ‘청담’을 중심으로 한 중기 시, 그리고 그 주제 대상을 인생과 사물과 실재 자체에 깊이 접근시키면서 한층 더 원숙한 시적 경지에 이른 후기작 ‘사력질’, ‘경상도의 가랑잎’ 등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수확은 한국의 서정시가 도달할 수 있는 한 가능성과 그 한계를 보여준 찬란한 성과라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형이 이루어놓은 이러한 시의 업적은 앞으로 더욱 새로운 역사의 조명을 받으면서 한국시의 한 정수(精髓)로서의 불멸의 영예를 누려갈 것입니다.
  
목월 형! 가장 험난하고 혼란했던 시대에 생을 받은 형의 한평생 62년, 그 중에도 오직 시를 위해서 시인으로서 바쳐온 약 반세기 40여 년은 형의 생애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말해 줍니다. 만년 들어 더욱 심혈을 기울였던 시의 후진의 양성과 대학 교육에 대한 헌신적인 공로는 가르침을 받은 허다한 제자들의 마음속에 측정할 수 없는 감화로 이어나갈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나고 죽음이 오직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고, 그 삶을 바르고 옳게, 뜻있고 값있게 영위하고 못함이 우리들 자신의 책임일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사람의 한 생애의 총결산이 어찌 한낱 육신의 목숨을 거두는 일로만 끝날 수야 있겠습니까.
  
목월 형! 형과의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이 시간이 슬프고 슬플수록, 우리는 그 육신 이상의 무엇, 영원히 꺼지지 않을 시의 불꽃의 생명과 함께 보다 더 영원한, 보이지 않는 생명의 영원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목월 형! 하늘나라의 광명은 저 하늘의 햇볕보다도 더 밝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총으로 부디 오래오래 천복을 누리시기를 빕니다.
  
이번 호 암송추천시는 조오현 스님의 ‘파도’입니다. 스님의 오도송(悟道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파도/ 조오현 (1932 ~ 2018)

밤늦도록 불경을 보다가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먼 바다 울음소리를
홀로 듣노라면

천경(千經) 그 만론(萬論)이/
바람에 이는 파도란다

 

 

무등일보 격주간지 아트플러스에 연재한 칼럼 '문길섭의 행복한 시암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