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에 들어 본 현대시조 시인으로는 가람 이병기 선생, 청마 유치환 선생과 연애편지를 주고받아 널리 알려진 이영도 여사와 노산 이은상 선생 뿐인 것 같다. 최근에서야 이런 대가(大家)들 말고도 좋은 시조 시인들이 여러 분 계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중의 한 분이 백수(白水) 정완영 선생이시다.
며칠 전, 한 문학강연집에서 시에 대한 정 시인의 글을 읽었는데 크게 마음에 와 닿았다. 쉬운 말로 시의 본질을 이렇게 풀어놓았다. “시의 본질은 부드러움이다. 과학이 발달하고 분초를 다투는 정보산업시대에 시가 설 자리가 어디 있느냐, 한다면 그것은 무식을 지난 무지의 소치이다. 과학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사회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정밀하고 거대한 조립체가 되는 것이다. 이 거대한 조립체에 윤활유를 쳐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당장 이 기계는 불이 일어나고 사회는 망가지고 말 것이다. 그 말고도 시는 ‘타이름’이고, 시는 ‘여유’이고, 시는 세상살이 만반의 병폐를 고쳐주는 ‘치유’의 역능(力能)을 담당하는 것일진대 시 없는 세상을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고 나서 덧붙이기를 “만약에 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가슴은 건조하고 그 가정은 삭막할 것이며, 그 사회는 경직될 것”이라 했다.
정 시인의 작품 중에 내가 좋아하는 ‘초봄’이라는 시조가 있다. “내가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닦아 내면/ 새 한 마리 날아가며 하늘빛을 닦아 낸다/ 내일은 목련꽃 찾아와 구름빛도 닦으리.” 이 시조를 가만히 읊조리면 산뜻한 초봄의 느낌이 정겹게 다가온다. 문학평론가 김재홍 교수는 이 시에 대한 느낌글의 첫 줄에 “참 맑은 서정시는 우리의 지친 몸과 마음을 맑고 밝게 씻어 준다”고 적어놓았다. 깊이 공감한다. 경쟁과 매연과 소음공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에겐 꼭 좋은 시들이 곁에 있어야하리라.
'시암송칼럼(2008-14)'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치준 목사의 시사랑 (0) | 2009.04.01 |
---|---|
유행가와 시의 차이 (0) | 2009.02.19 |
손수익 前 장관의 질문 (0) | 2009.02.12 |
조정래 선생과 시암송 (0) | 2009.02.10 |
시암송수처정토 (詩暗誦隨處淨土) (0) | 2009.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