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을 닦으며 - 허형만
새로이 이사를 와서
형편없이 더럽게 슬어 있는
흑갈빛 대문의 녹을 닦으며
내 지나온 생애에는
얼마나 지독한 녹이 슬어 있을지
부끄럽고 죄스러워 손이 아린 줄 몰랐다.
나는, 대문의 녹을 닦으며
내 깊고 어두운 생명 저편을 보았다.
비늘처럼 총총히 돋혀 있는
회한의 슬픈 역사 그것은 바다 위에서
혼신의 힘으로 일어서는 빗방울
그리 살아온
마흔세 해 수많은 불면의 촉수가
노을 앞에서 바람 앞에서
철없이 울먹였던 뽀오얀 사랑까지
바로 내 영혼 깊숙이
칙칙하게 녹이 되어 슬어 있음을 보고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온몸으로 온몸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암송 추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항아리 - 고성기 (0) | 2012.07.27 |
---|---|
들 - 천양희 (0) | 2012.07.26 |
비갠 뒤 - 문삼석 (0) | 2012.07.21 |
어느 새벽길 - 김후란 (0) | 2012.07.14 |
어머니가 주신 것 - 허영자 (0) | 2012.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