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작년에 원고청탁을 받고 쓴 글 한 편 올립니다.
곧 설 연휴를 맞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설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늘 좋은 글 써주신 민선생님, 물빛님, 친구 최현동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 수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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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한권의 책] 詩가 주는 생의 기쁨과 깊이
정효구 ‘시 읽는 기쁨’
고교 시절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나 유치환의 ‘바위’ 같은 시가 좋아서 숙제도 아닌데 외운 적이 있다. 대학시절엔 짝사랑한 연상의 애인에게 한용운의 시를 엽서에 적어 우편으로 보내기도 했다. 전방에서 보병소대장으로 군복무 중일 땐 힘들어하던 내 병사들에게 푸슈킨의 ‘삶’을 외우게 했던 기억도 새롭다. 그 후 오랜 세월동안 시는 내게는 별 상관 없는 존재로 남아 있었다.
행운이었다! 불혹의 나이에 들어선 어느 날, 한 작가 지망생의 시암송을 듣고 불현듯 시를 외우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나는 명시를 골라 일주일에 한 편씩 즐겁게 외워나갔다. 암송시가 많아지자 무슨 보물이라도 늘어난 듯 가슴이 뿌듯해졌다.
그즈음 책방에서 문학평론가 정효구 교수가 쓴 ‘시 읽는 기쁨’(전 3권)을 만났다. 한창 시암송의 재미에 빠져있던 터라 제목에 마음이 끌렸다. 저자는 세 권의 책에서 아주 좋은 문장으로 시 75편의 해설과 감상을 적어놓았다.
개별 시에 대한 해설에서 벗어나 책 곳곳에 보석처럼 박힌 저자의 시에 대한 생각은 시와 시인에 대한 사전적인 정의에만 익숙해있던 내게 시를 ‘별처럼 높고 빛나는 존재’로 인식하게 했다. 그가 시인을 “심장에 물기가 유난히도 많은 사람들” 혹은 “은유적인 말 속에 비밀을 숨겨놓고 시치미 떼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할 때는 “그래, 그렇지!”하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법이 사람을 사무적이게 만든다면, 시는 사람을 너그럽게 만든다”는 표현도 시에 대한 따뜻한 느낌을 더욱 새롭게 했다.
몇 년이 지나 500여 편쯤 외웠을 때 이웃들과 시암송의 행복을 나누고 싶었다. 시암송운동본부를 설립하고 ‘한 달에 시 한 편, 명시 50편 외우기’란 표어와 함께 50편의 시카드를 만들어 원하는 분들에게 선물로 드리기 시작했다.
이처럼 시암송운동을 펼치고 있는 내게 저자의 메시지는 늘 힘이 되고 있다. 가령 “시를 알고, 좋아하고, 즐기는 일은 우리들의 밋밋한 생에 적잖은 기쁨과 깊이를 선사할 것이다”라는 말은 ‘시를 외우면 뭐가 좋은가?’라는 물음에 적절하고 명쾌한 대답이 되어주었다.
그는 우리들에게 “물리적인 오솔길이든, 마음의 오솔길이든 혼자 고요히 산책할 수 있는 오솔길 하나쯤 공들여 만들어보는 것”을 권한다. 이 권유는 내 마음을 무척 설레게 하고 행복한 다짐을 하게 했다. 지상의 순례를 마칠 때까지 시암송의 오솔길을 공들여 만들어보겠노라고.
이 책은 고맙게도 시에 대한 내 좁은 시야를 넓게 해주고, 내 가슴에 시암송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와 평생을 같이 할 여러 좋은 시인과 명시를 만나게 해주었다.
이 책의 인연으로 내 애송시가 된 김상미 시인의 ‘질투’라는 시를 소개하고 싶다.
옆집 작은 꽃밭의 채송화를 보세요/ 저리도 쬐그만 웃음들로 가득찬/ 저리도 자유로운 흔들림/ 맑은 전율들// 내 속에 있는 기쁨도/ 내 속에 있는 슬픔도// 태양 아래 그냥 내버려두면// 저렇듯 소박한 한 덩어리의 작품이 될까요?/ 저렇듯 싱그러운 생 자체가 될까요? 문길섭 〈시암송국민운동본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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