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송 추천시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이기철)

日日新 2009. 1. 19. 21:53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 이기철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웃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릴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 같은 약속도 한다

이슬 속으로 어둠이 걸어들어갈 때

하루는 또 한 번의 작별이 된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며 완성하는 이별

그런 이별은 숭고하다

사람들의 이별도 저러할 때

하루는 들판처럼 부유하고

한 해는 강물처럼 넉넉하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 아름다웠다

내가 만난 사람도 모두 아름다웠다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하루를 건너가고 싶다

떨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내 아는 사람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 이기철/ 1943년 경남 거창 출생. 영남대 국문과와 동대학원 졸업. 1972년 <현대문학>에 시를 발표하여 작품활동 시작. 시집 <청산행>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등이 있음. 김수영 문학상, 시와시학상 등 수상. 대구 시인협회장, 영남대 교수 역임

'암송 추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0) 2009.01.21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0) 2009.01.20
새와 수면 (이정환)  (0) 2009.01.18
선물의 집 (이창기)  (0) 2009.01.16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0) 2009.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