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에 윤동주 같은 이미지를 지닌 시인을 꼽아 보라면 그 중 한 사람으로 저는 정호승 시인을 들겠습니다. 그의 시에는 윤동주 시에서 볼 수 있는 부끄러움과 슬픔, 그리고 운명애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 생명 사랑의 정신과 순결지향성, 그리고 서정적 감응력이 애잔하게 물결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정호승의 시에는 삶과 사랑의 원죄의식 같은 것이 부끄러움의 미학으로 형상화되고 있습니다. 생명의 아픔, 사랑의 슬픔이 별빛처럼 맑고 은은하게 금결은결로 반짝이고 있는 것이지요.
흔히 그렇게들 말하지요. 상처가 있는 과일이 향그럽듯이, 사람들에 있어서도 고통과 슬픔을 겪어 본 그런 그늘 있는 영혼이 향그럽고 아름답다고 말입니다. 그러기에 정호승 시인은 사람에 있어서도 어딘가 그늘이 어려 있는 사람, 눈망울에 절망과 상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가 봅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요? 생명을 제대로 알려면 사랑을 알아야 하고, 사랑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슬픔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사랑과 슬픔을 알아야 생명이 더 향기로울 수 있는 것이고, 인생 또한 절망과 아픔을 겪어 보아야 더 빛나는 영혼으로 고양(高揚)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삶도, 사랑도 슬픔과 절망 속에서 차츰 성숙돼 가고 더욱 완성돼 간다는 말씀입니다. 정호승의 시가 이러한 사랑과 슬픔의 진정성을 지니고 있기에 밤하늘의 별빛처럼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 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김재홍,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