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송 추천시

익명의 스냅 (임영조)

日日新 2010. 5. 19. 08:37

익명의 스냅


- 임영조


봄소풍 나온

할머니들 대여섯이

오순도순 화투를 친다

손주같은 햇살이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우는 잔디밭에서

노년을 말리듯 화투를 친다

이미 색 바랜 광(光)과 남은 소망을

한 장씩 탁탁 던지고 나면

왠지 허전하고 저린 손이여

못내 아쉽고 덧없는 세월이여

송학이 앉았다 날아간 자리에

매화가 피고 지고

객혈하듯 벚꽃이 온건한 방석

때아닌 국화, 철 이른 모란 난초

덩달아 피고 지는 화무십일홍

하느님도 구경하기 심심하신지

싸리순 몇끗 짐짓 내미는 봄날

이런 날은 더 이상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단순한 기쁨이 좋다

익명의 스냅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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