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암송칼럼(2008-14)

아버지의 유훈 하나

日日新 2009. 1. 3. 12:56
 

아버지는 여든 가까이 되어 세상을 떠나셨다. 어릴 때부터 몸이 불편하셨지만 당신의 운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역경을 헤쳐 의사가 되셨다. 아버지께서 남기신 다섯 가지 父訓(신앙, 건강, 근면, 인내, 용감)은  지금도 우리 자녀들 마음에 오롯이 남아 있다.


아버지는 30대에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줄곧 신앙인의 삶을 사셨다. 새벽이면 먼저 일어나 앉아 좋아하시는 찬송가 몇 곡(내평생 소원,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내 주를 가까이, 나의 갈길 다가도록)을 부르셨다. 새벽잠결에 듣는 아버지의 낭랑한 찬송소리는 자장가처럼 달콤했다. 언젠가 찬양대석에서 아버지가 즐겨부르시던 찬송을 부르면서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나기도 했다. 세상 욕심이 없으셨던 아버지는 이따금 막내아들인 내게 무료진료의 꿈을 얘기하셨다. 하지만 이 꿈을 이루기에는 많은 자녀와 친척들 뒷바라지의 짐이 너무 무거우셨다.


대학 다닐 때였던 것 같다. 여름방학이 되어 집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내게 불쑥 한 말씀 하셨다. “시편(구약성경에 실린 150편의 시를 모은 책)을 많이 읽어봐라!” 그땐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내게 시읽기를 권하셨다는 게(비록 경전 속의 시지만) 무척 자랑스럽고 고맙게 여겨진다. 이 땅의 많은 아버지들이 스스로 시를 가까이 하면서 자녀들에게 시읽기를, 시외우기를 권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버지의 유훈을 떠올리면 이런 바람이 내 마음을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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