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송시 - 참 편하고 좋은 친구
가족 친지에게 전화를 걸 때면 조금 주춤해진다. 바쁘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전화받기가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송시는 내가 찾으면 언제나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만나주고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준다. 한밤중이나 꼭두새벽에 불러내도 귀찮아하는 빛이 없다. 마치 잠시 구름 속에 머물러 있다가 둥글고 환한 얼굴을 내미는 보름달 같다고나 할까. 내가 작별을 원하면 그때도 암송시는 좋은 얼굴로 다음을 기약하며 슬며시 자리를 떠난다.
이따금 가까운 이들에게서 오해를 받거나 무안을 당하는 때가 있다. 이런 일로 마음의 평화가 깨지고 혼란스러워지기도 한다. 암송시는 그렇지가 않다. 김종길 시인의 싯구처럼 암송시는 ‘그 변함 없는 착한 풍경’으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고은 시인이 노래했듯이 ‘언제까지나 변함없는 따뜻한 숨결’로 내게 다가온다. 사람들의 변덕과 무례를 겪을 때면 더욱 암송시의 ‘한결같은 우정’이 고맙고 귀하게 여겨진다.
김용택 시인의 ‘참 좋은 당신’이란 시가 있다. ‘당신’을 암송시로 생각하고 이 시를 읊으면 이 시는 그대로 암송시에 대한 내 사랑의 고백이 된다. “어느 봄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해도/ 참/ 좋은/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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