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야기 - 함민복 시인의 결혼과 사랑
그는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등록금 없이 먹여주고 재워주는 서울 수도전기공고에 진학했다.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하며 1988년 시인으로 등단했고, 또래보다 몇년 늦었지만 서울예대를 졸업했다. 하지만 함민복 시인(50)은 대학원 공부를 계속해서 국문과 교수나 문학평론가가 되는 대신, 30대에 강화도에 들어가 육체노동을 하면서 전업시인으로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쉰이 다 되도록 월세 10만원짜리 방에 살면서 시만 쓰던 노총각 시인에게 지난해 동갑내기 노처녀 박영숙(50)씨가 선뜻 시집을 왔다. 서울에서 23년간 회사원으로 일하며 취미생활로 문화센터에서 시쓰기를 배우다가, 한 학기 동안 강사로 나선 함 시인과 연애를 했다고 한다. 결혼 후 두 사람은 조그만 인삼 가게를 차렸지만, 적게 벌어 적게 쓰고 시 쓰는 데 집중하겠다는 삶의 방식은 변함이 없었다.
“늦게 결혼하면서 왜 이렇게 ‘돈 없는 남자’를 고르셨느냐”는 질문에, 박씨는 “어휴…. 돈 많은 남자 만나고 싶었으면 이 나이까지 혼자 살았겠느냐”면서 “삼시세끼 죽만 먹어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살고 싶어 기다렸다”고 했다.
함 시인은 시 <긍정적인 밥>으로 유명하다. “시(詩) 한 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신문사·잡지사·출판사·광고기획사에서 “글 써달라” “강연해달라”는 청탁이 그치지 않고 들어오는 문인이기도 하다.
부인 박씨는 “남편이 원고 많이 써서 돈 많이 가져오는 것보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좋은 시 많이 쓰는 게 저는 더 좋다”고 했다.
함 시인은 결혼한 뒤 시집 <꽃봇대>를 완성했다. 그는 “결혼하고 보니 부부는 마치 양쪽 눈(目)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부부가 서로 마주 보는 사이가 아니라, 하나의 세상을 함께 바라보느라 끊임없이 힘을 모아 초점을 맞추는 사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나이에 결혼식 올리는 것도 쑥스러웠지만, 구순(九旬) 장모님이 ‘딸이 면사포 쓰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식을 올렸다”고 했다.
“청첩장을 딱 100장 찍었지만, 장가간다는 기사가 조선일보에 나는 바람에 ‘노총각 함민복이 장가간다니, 안 보러 갈 수 없다’고 문단 선후배들과 강화도 주민들이 모두 합쳐 500명이나 오셔서…. 어휴, 음식을 못 드시고 간 분이 드신 분보다 훨씬 많았어요.”
함 시인은 “결혼식은 삶의 출발인데 많은 사람이 결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그러다 보니 ‘얼마나 잘 결혼했나’ 과시하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나 싶다”고 했다. (김효인, 조선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