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들의 시사랑/시인들의 일화

김상옥 시조시인

日日新 2012. 3. 14. 19:52

나의 아버지, 김상옥 시인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닷새 후 뒤따라가셨다. 두 분을 연이어 떠나보낸지 만 7년이 되었다. 나는 그동안 벼락같은 두 분의 죽음을 수없이 자책하며 때론 슬픔의 수렁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나는 학교에서 아버지 시를 배우며 성장했다. 아버지는 우리나라 대표 시조 시인 초정 김상옥. 초등학생 때는 <봉선화>, 중 고등학생 때는 <옥저>, <백자부>, <다보탑> 등 아버지 자품이 교과서에 실렸다. 사춘기 때는 특별한 아버지 때문에 시샘도 받았다.

 

아버지는 내 작은 가슴으로 이해하기에 참 벅찬 분이셨다. 세상의 가장 높은 가치를 아름다움에 두고, 평생 그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만들어 내려 애쓰셨다. 아버지는 시조뿐 아니라 동요, 동시, 수필, 글씨도 잘 쓰셨다. 그림도 잘 그리고, 전각의 대가셨다. 도자기 감정은 물론 스스로 도공을 자처하실 정도였다. 아버지는 그야말로 예술을 빚어내는 마술사였다. 여든이 넘어서도 심심풀이로 과자 통에 색색의 한지를 붙이고 그림처럼 글씨를 써서 근사한 필통을 만들어 사용하셨다.

 

내가 대학생일 때의 일이 떠오른다. 그날 아버지와 유명한 신발 가게에 주문해 놓은 내 구두를 찾으러 갔다. 나는 급한 약속이 있어 새 구두를 신자마자 아버지에게 인사하는 둥 마는 둥 먼저 가 버렸다. 아버지는 그게 몹시 섭섭하셨는지 바로 <어느 날>이란 시를 쓰셨다. “구두를/ 새로 지어/ 딸에게 신겨 주고// 저만치/ 가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 생애/ 사무치던 일도/ 저리 쉽게 가겠네.”

 

미적 감각이 뛰어난 아버지는 구두를 스케치해서 가게 직원한테 보여 주고 그대로 만들어 달라고 하셨다. 구두에 기발한 장식을 더해 아주 멋있게 디자인하셔서, 직원들이 늘 놀라워했다. 아버지는 옷도 스케치해서 맞춰 주셨다. 그 옷의 색깔이나 디자인은 요즘 감각에도 전혀 손색없었다.

 

그러고 보면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내가 늦은 나이에 옷이며 장신구를 만들면서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은 온전히 아버지 덕분이다. 열정과 보람으로 충만한 나를 보면 아버지가 얼마나 좋아하실까. 살아 계실 때 그 많은 시간을 어찌 다 보내고 이렇게 안타까워한단 말인가. (김훈정, 패션 디자이너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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