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이 있는 풍경
- 강현국
아무것도 아닌 듯이 감꽃이 피고 감꽃 그늘 아래 아무것도 아닌 듯이 빈 터가 있고 이씨를 기다리는 평상이 있고 김씨를 기다리는 주막이 있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김씨가 이씨의 멱살을 잡고 이씨가 김씨의 아랫배를 걷어차고 아무것도 아닌 듯이 허리 굽은 아낙이 술상을 다시 내고
아무것도 아닌 듯이 감꽃이 지고 감꽃 그늘 그 자리에 찬바람이 들어서고 아무것도 아닌 듯이 빌라가 들어서고 아무것도 아닌 듯이 골프장이 들어서고 사우나가 들어서고 아무것도 아닌 듯이 이씨가 안 보이고 김씨가 안 보이고
아무것도 아닌 듯이 아침마다 나는 허리 굽은 아낙에게 담배를 사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아침마다 나는 평상만한 그 섬을 쓸쓸해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안 보이는 이씨와 김씨에게 전화를 걸고 싶고 아무것도 아닌 듯이 아무것도 아닌 듯이 아침마다 골프를 끝내고 사우나를 즐기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사라지는 섬처럼 태양에 부대끼고 돌멩이에 부대끼고 땟수건에 부대끼고
* 강현국 시인 / 1949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 197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견인차는 멀리 있다』, 『먼길의 유혹』등이 있음. 현재 대구교육대학교 교수. 계간 『시와 반시』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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