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과의 만남

사람이 무엇인지?

日日新 2009. 6. 20. 18:21
 

사람이 무엇인지?


나는 평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집에서 학문의 초보 공부를 마치고 서당엘 다니면서 사략(史略)이니 통감(痛鑑)이니 하는 것을 배웠다.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할 무렵이니까 18, 9세쯤 되었던 시절일 것이다. 나는 사람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하였다가 혼이 난 일이 있다. 내 딴에는 철학이라는 공부를 하고 싶어서 어른들께 이 방면의 진학 소원을 상의했더니 종형(從兄)이 “그래 철학이란 무엇을 하는 학문이냐”고 엄숙한 태도로 묻는 것이었다. 부귀공명(富貴功名) 중 그 어느 것을 목적으로 하느냐는 것이었다.


딱하게도 나는 철학공부를 해서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일찍이 들은 일이 없었다. 공명(功名)과도 거리가 먼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 내 생각을 그대로 얘기했더니,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철학이란 도대체 무엇을 하는 학문인지 모르겠으니, 객지에서 그런 공부를 하라고 뒤를 대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안 되는 바에야 한 마디 안 할 수도 없어서, “ 사람들이 왜 그처럼 부귀공명 밖에 모르는지, 그 ‘사람’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서 그런다”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말았다. 그랬더니 종형은 노발대발 언성을 높여, “그래, 네 나이 몇 살인데 사람을 몰라? 젖먹이 어린애도 얼려주면 사람을 알아보는데” 하면서 펄쩍 뛰는 것이었다.


그러고 난 지 50년, 이제 나는 내가 하고 싶어 하던 철학공부를 계속해 오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사람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으니 부끄러운 노릇이다. (박종홍, 전 서울대 대학원장) <젊은이여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대우출판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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