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보았던 영화에 이런 장면이 있었다. 한 장군이 통치하는 서슬 푸른 독재체재 하에서 한 남자가 최고의 배우가 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 배우의 수업은 어찌나 혹독했든지 정말 신기(神技)에 가까울 만큼 완벽해 갔다. 장군은 그 배우를 소위 국가배우로 발탁해서 자기의 정책을 선전하는 극(劇)에 출연시키려고 속으로 주목하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되는 것은 당시 현실로 보아 그 배우 개인에게는 눈부신 성공이요, 출세의 길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그 영화에서 주목했던 것은 그런 정치적 복선의 주제가 아니라 무심히 스쳐가는 장군과 배우의 대사들이었다. 장군은 비록 독재자였지만 한 사람의 사나이로선 더 없는 권위와 힘을 장악한 매력 있는 남성이기도 했다. 전신을 땀에 적셔가며 온몸으로 연습하는 배우의 연습장에 하루는 뜻밖에 장군이 나타났다. 어깨에 달린 금배지, 반듯한 군복, 그리고 무릎까지 올라온 군화는 그 모습만으로도 위엄과 권위에 가득 차 있었다.
땀에 젖어 머리칼이 마구 흐트러진 배우 앞에 장군은 손을 내밀며 이렇게 칭찬했다. “연습을 많이 했군!” “생애를 걸었습니다.” 잠시 후 장군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들릴 듯 말 듯한 혼잣말로 이런 말을 내뱉는다. “생애를 걸었다구... ? 그래 그것이 대가(大家)의 비결이지...” 장군은 옷자락에 바람을 일으키며 이내 연습장을 나갔다. 물론 그 배우는 단연코 그 나라 최고의 배우로 지명되었음은 물론이다.
나는 그 영화를 보는 순간, 영화 자체의 스토리와는 달리 괜히 전신에 전율이 옴을 느꼈다. 목숨의 비의(秘意)를 깨달은 사나이와 사나이의 대화를 마치 핀으로 꽂아놓은 것처럼 순간에 포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애를 걸었다구...? 그래 그것이 대가(大家)의 비결이지...” 나는 장군의 말 속의 대가(大家)라는 말을 사나이라는 말로 바꾸어 속으로 나직하게 읊조려 보았다. 사나이의 비결이지... (문정희, 시인) <내가 만났던 가장 멋진 남자, 보성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