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격주간지 詩 칼럼 (2019. 5. 8)
며칠 전 광주경총 주최 금요조찬포럼 강연회에 참석했습니다. 연사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었습니다. 김 의장은 ‘백범 김구와 애국자들’이란 주제로 얘기했습니다.
그때까진 백범에 대해선 자세한 건 모르고 교과서에 실린 ‘나의 소원’에 나오는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란 글만 시처럼 암송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김 의장의 소개로 몰랐던 일화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백범은 서너 살 때 천연두를 앓아 얼굴에 곰보자국이 있었다고 합니다. 열일곱 살 땐 과거시험을 쳤다가 낙방했는데 부친이 풍수와 관상공부를 권해서 관상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기 관상을 연구하면서 자신에게 귀격(貴格)이나 부격(富格) 대신 천격(賤格), 빈격(賓格), 흉격(凶格)만 있는 걸 알고 낙담이 되었는데 관상 책에 “상(相) 좋은 것은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은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라는 구절을 발견하고 그때부터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에 힘썼다고 합니다.
김 의장은 하얼빈 역에서 이토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가 사형집행을 앞두고 동생들을 접견할 때 했던 유언도 소개했습니다. ”너희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당부해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더욱 우리의 가슴을 치는 문장은 아들이 입을 수의(壽衣)와 함께 보낸 안 의사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의 편지입니다. 그 아들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 (...)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公憤)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어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바라지 않으니, 훗날 천당에서 만나자.” 김 의장은 이글에서 “죽어라”라는 말이 가장 마음을 울린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어머니가 자식에게 “죽어라”고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다음은 일본 천황에게 폭탄을 투척한 이봉창 의사가 김구 선생을 만나 했다는 말입니다. “제 나이 서른 한 살, 앞으로 30년을 더 산다 한들 과거 반생에서 맛본 방랑생활에 비춘다면 무슨 낙이 더 있겠습니까. 이제는 독립사업에 몸을 바쳐 영원한 쾌락을 얻기 위해 상해에 왔습니다.” 대의(大義) 앞에 한없이 당당했던 젊은 애국자의 말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상해 홍구공원에서 열린 일본 천황 생일 축하식에서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가 스물세 살 때 집을 나서면서 했다는 말도 우리의 심금을 울립니다. “장부출가 생불환 (丈夫出嫁 生不還)/ 사내 대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작은 이익과 욕망 앞에서도 쉽게 흔들리며 기껏 자신과 자기 가족의 행복과 안위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하루에 단 몇 분의 시간이라도 이 불세출(不世出) 영웅들의 뜨거운 문장들을 떠올려본다면 속좁은 마음이 조금이나마 더 커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호 암송추천시는 초봄에 어울리는 정완영 님의 ‘봄 오는 소리’입니다. ‘소곤소곤’이라는 시어가 ‘봄 오는 소리’를 잘 말해주는 듯싶습니다.
봄 오는 소리/ 정완영(1919 ~ 2016)
별빛도 소곤소곤/ 상추씨도 소곤소곤
물오른 살구나무/ 꽃가지도 소곤소곤
밤새 내/ 내 귀가 가려워/
잠이 오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