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죽음 (김열규 교수, 국문학)
S兄, 兄도 들었으리라 믿소. 그 화사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의 노래를 말이오. 그것은 兄을 덮은 잔디에서 몇 포기 잡초를 뽑고 막 언덕을 내려 오던 참이었소. 앵두빛 고운 치마저고리의 한 여인이 어느 무덤 머리에서 노래하고 있었던 것은.
추석 다음날이라 많치는 않았으나 그래도 드문드문 오고 가는 성묘객 속에서도 오히려 심연하게 노래부르고 있었소. 억새 끝을 부는 바람결이 파랗게 물살짓도록 맑은 하늘 아래, 그 여인은 불긋하게 피어난 연꽃처럼 앉아있었소. 눈이 시리게 밝은 햇살 속에서 햇살보다 더 찬연한 여인이 은은하게 찬송하고 있었음을 兄도 먼 빛으로 보셨으리다.
마침, 바로 곁을 지나치던 걸음이라 墓碑 뒷면을 읽을 수 있었소. “아내 아무개 세움”이라 새겨진 것으로 보아 그 꽃도 같고 가을도 같은 여인은 지아비 곁에서 노래하고 있었던 것이오.
兄도 알다시피 信徒가 아닌 나로서는 노래의 나머지 가사는 알아들을 수 없었소. 다만 <주 너를 지키리>라는 후렴만이 되풀이 들려왔을 뿐이오. 조금은 소리 높이 부르는 후렴이 푸른 잔디의 언덕에 남기는 선연한 餘韻의 破紋. 安息이란 이런 것, 아름다움이란 이래야 하느냐고 찬탄하여 마지않았소.
兄, 조금전 兄 곁에서 지녔던 내 마음새가 부끄러워졌소. 兄을 보낸지 벌써 이태라는 생각에 눈망울에 엉기는 햇살마다 눈물지듯 하던 그 한 때가 말이오. 내 어두운 마음의 그늘이 兄에게 마저 드리웠을 것을 뉘우쳐야 했소, 삶과 죽음이 저 지어미가 이룬 지아비와의 만남 같을 수도 있다는 생각.
兄. 나는 차마 망연하여 가벼운 물살처럼 와 닿는 노래 소리에 몸과 마음을 함뿍 적시고 있었소. 죽음을 환하게 밝히는 삶이 있음을 본 이 가을, 새로운 삶을 얻은 듯 유달리 향기롭소.
S형. 가셔서도 오히려 내게 그만한 보람을 끼치셨구려. 길이 간직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