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암송칼럼(2008-14)

시가 뭐냐고?

日日新 2009. 1. 17. 12:00

 

곽재구 시인의 대표시 <사평역에서>는 나와 인연이 깊은 듯하다. 형님은 가족모임에서 내 시암송을 듣고 이 시가 맘에 들어 외웠다고 하셨다. 어느 겨울 요즘처럼 눈이 내렸던 날, 몸이 아파 주사를 맞고 병원침대에 누워있을 때도 이 시가 떠올랐다고 한다. 미국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한국인 여성의 고백도 내게 특별한 기억의 하나로 남아 있다. 우연히, 내가 뽑은 시모음집에서 <사평역에서>를 읽다가 헉! 하고 울음이 터져나오더라는 것.


광주의 한 도서관에서 마련한 곽시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강연을 통해서 시인이 이 시를 19세 때 썼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교교시절엔 학과공부는 제쳐두고 오직 시에만 빠져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어느 때는 꿈 속에서도 시를 쓰기도 했는데, 꿈 속의 시구를 잊어버릴까봐 잠이 깨면 얼른 종이에 옮겨놓았다는 얘기도 흥미롭게 들었다.


곽시인이 6년 전에 ‘곽재구의 포구기행’이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제목대로 나라 안의 작은 포구마을들로의 여행을 통해 ‘우리들이 잃어버리고 사는 지난 시간들의 꿈과 그 불빛들’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이 책에서 만난 그의 ‘시에 대한 한 생각’이 나를 지금도 행복하게 한다. “맑고 빛나는 것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언제나 큰 기쁨입니다. 시, 사랑, 추억, 무지개, 들국화, 길, 시간...... 맨발로 파도와 모래들이 만나는 경계선을 따라 걸으며 나는 오래전부터 내가 좋아했던 말들을 하나씩 생각했습니다. (...) 그 중의 한 파도에게 말했지요. 안녕. 나는 시 쓰는 사람이야. 짧은 여행 중에 있지. 시가 뭐냐고? 맑은 거지. 수평선 끝에서 빛나는 햇살 같은 거. 영원히 바닷물을 푸르게 하는 신비한 염료 같은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