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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김해자)

日日新 2010. 6. 13. 21:14

인연 


- 김해자


너덜너덜한 걸레

쓰레기통에 넣으려다 또 망설인다

이번에 버려야지, 이번엔 버려야지, 하다

삶고 말리기를 반복하는 사이

또 한 살을 먹은 이 물건은 1980년생

연한 황금색과 주황빛이 만나 줄을 이루고

무늬 새기어 제법 그럴싸한 타올로 팔려 온 이놈은

의정부에서 조카 둘 안아 주고 닦아 주며 잘 살다

인천 셋방으로 이사 온 이래

목욕한 딸아이 알몸을 뽀송뽀송 감싸주며

수천 번 젖고 다시 마르면서

서울까지 따라와 두 토막 걸레가 되었던

20년의 생애,

더럽혀진 채로는 버릴 수 없어

거덜 난 생 위에 비누칠을 하고 또 삶는다

화염 속에서 어느덧 화엄에 든 물건

쓰다 쓰다 놓아 버릴 이 몸뚱이


* 김해자 / 1961년 목포 출생.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 제8회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 노동자잡지 「삶이보이는창」 발행인, 노동문화복지법인 상임이사 등 역임. 2007년 현재 중앙대 예술대학원에서 시창작을 강의., 장애인, 노동자, 사회운동가들과 더불어 예술치료 프로그램을 진행. 시집 <무화과는 없다>, <축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