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日新 2010. 6. 2. 20:40

시인의 일화 - 고은 시인

 

오후 6시, 내가 책상 앞에서 일어서는 시각이다. 이 시각부터 나는 사람을 만나거나 술을 한잔 하거나 한다. 하지만 10월 13일 오후 6시에는 책상 앞을 떠날 수 없었다. 두 신문사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10월 13일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이 유력한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나는 고은 시인이 수상자가 될 경우 그분과의 개인적 친분과 문학 세계에 관련된 글을 두 신문사에 써  내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6시부터 잔뜩 긴장한 채 서재와 안방을 오가면서 신문 원고를 메모하거나 TV 화면을 힐끔거리거나 했다.


8시부터는 꼼짝도 하지 앟고 TV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화장실에도 갈 수 없었다. 한국인의 문학적 업적에, 우리의 모국어에 노벨 문학상이 얹힌다는 것을 확인하는, 필경 무지하게 짜릿할 터인 그 감동의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먹거나 마실 수도 없었다. 고은 시인이 수상할 경우, 밤늦게까지 써야 할 원고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8시 30분쯤 되었을까? TV 화면 속의 아나운서가 약간 풀 죽은 표정을 하고는,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이 아닌, 영국의 극작가 해럴드 핀터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아쉬웠다. 허탈했다. 섭섭했다.


솔직하게 쓰자. 아쉽고, 허탈하고, 섭섭하기만 했던가? 엉뚱한 사람이 수상한 덕분에 나는 두 꼭지 신문 원고를 써야 하는 엄청난 부담에서 놓여났는데? 고백하거니와, TV 앞에서 일어서면서 내가 한 말은 이것이었다. “아이고, 살았구나.”


그로부터 한주일 뒤, 세계 도서 축제가 열린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고은 시인을 만났다. 마음고생 많이 하셨지요? 이런 의례적인 인사 끝에, 발표 당일 내가 했던 마음고생과, 발표를 듣는 순간 내가 보였던, 이기적인 반응도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러고는 가볍게 긴장했다. 그가 이런 말로 나를 야단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뭐라고? 내가 수상에 실패했는데, 모국의 문학에, 모국어에 돌아올 수도 있는 영광이 다른 곳을 흘러갔는데도 자네가 보인 반응이, 뭐? 아이고 살았구나? 신문 원고 쓰는 부담에서 놓여났다고, 뭐, 아이고 살았구나? 자네가 그러고도 한국의 작가야? 한국인이야?”


그러나 아니었다. 고은 시인은 나의 고백을 듣고는 한동안 탁자를 치면서 박장대소하더니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 안 섭섭해. 이 사람아, 그게 인간이야. 우리는 그런 인간에 대해서 써야 해!”


노벨 문학상 악몽(?)이 끝난 지 겨우 일주일, 고은 시인은 그 악몽을 거뜬하게 소화하고는 악동(?)으로 돌아와 있는 것 같았다. (이윤기, 번역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