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기 님
1년에 한번씩 모이는 여고 동창모임
화살처럼 달리는 나날들이 왜 이렇게 더딘가. 매년 갖는 모임이지만 이번 모임은 유달리 가슴 설레이면서도 아파온다. 당뇨로 몇십년간 고생했던 동무 서순애가 1개월전에 떠났다.
우리들의 기쁨조 최명희가 임파암으로 하루하루가 힘들다. 그렇게도 곱고 예뻤던 성연세는 파킨스와 여러 합병증으로 말도 우둔하고 거동도 남의 부축 없이는 한걸음도 불가능하다. 모일 때마다 팔팔하게 우리를 웃겨주던 이순자는 희귀병으로 오른팔을 못 쓰고 있다. 그런데도 동무들 볼 욕심으로 다들 참석해 주었다.
나는 회장 김태은의 부탁으로 내 신문 기사들과 14살에 만난 동무들의 예뻤다, 즐거웠다, 웃겼다하는 모습들이 떠올라 쓴 "내동무들"이라는 제목의 글과 그리고 詩 3편 (김태은:사랑 묶어 세우기, 함석헌:그 사람을 가졌는가, 정지용:향수)등을 30부씩 각각 복사하여 묶고 명시50편 카드 30부 챙기니 제법 무거웠다.
거기다 비는 오지요... 옷가방에 무거운 책가방, 우산은 받쳐야지... 힘은 들었지만 동무들 만난다는 설레임으로 기차에 몸을 싣고 송정동의 오흥자, 두암동의 이순자, 우리 세사람은 아련하게 먼- (!) 옛날 수학여행 떠나던 들뜬 마음으로 노닥거리며 논산에 도착하여 택시로 부여에 갔다. 터미널에선 태은이가 대전에서 온 진순자와 기다리고 있어 그 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보리사 건너 전원마을의 그림 같은 태은이 별장에 도착하니 20명의 동무들(서울, 대전, 대구, 청주, 충주, 전주, 익산)이 먼저 와 있었다. 모두모두 끌어안고 볼을 부비며 세상번뇌 다 잊고 기쁨의 함박꽃들이 활짝 피었다.
저녁 식사는 태은이 아들이 멧돼지 삼겹살 성찬을 베풀어 흥겨웠다. 성찬 후엔 회장 태은과 총무 이정숙이 미리 잘 짜낸 진행표를 따라 틈없이 진행되어 좋았다. 전에는 모일 때마다 끼리끼리 몇사람씩 뭉쳐 이야기나누고 동양화 그림 그리고 해서 산만한 느낌이 들었었다.
제일 먼저 내가 쓴 "내 동무들"을 읽고 전회의록 낭독 후 회비수납하고 진행 중간중간에 시암송의 시간을 주어 모두 6편의 詩(위의 3편의 시와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정호승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 윤동주의 ‘별 헤는 밤’)를 암송했다. 동무들의 한숨같은 환호소리... 지금도 내가슴이 뜨거워진다. 최여순의 나이를 잊은 날아갈 듯한 프로솜씨의 살풀이 춤솜씨는 흥겹고 맛나는 시간이었다.
다음날 19일엔 있는 듯 없는 듯 언제나 조용하기만 했던 전정희(전북대학 명예교수)의 지도로 노래와 율동을 배워 빙글빙글 즐겁게 폴카를 췄다. 통증으로 잠 못들어 입맛 떨어져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수면제와 진통제로 버티는 하루 한시간이 금싸라기 같은 최명희의 국자와 스탱양푼의 깽가리춤은 우리들을 울리고 말았다. 이 동무 마지막 지 모습을 우리들에게 각인시켜 놓고 가려고 그러하나 생각들이 들어 가슴들이 너무 아팠다.
언제나 빠질 수 없는 윷놀이 시간, 승부에는 동무도 양보도 없었다. 얼굴들을 붉히며 어거지 쓰고 ... 상품들을 받고 좋아하고(상품이라야 팬티지만 ㅎㅎㅎ).
다음은 출석상에 20여 년 동안 개근상은 없고 정근상만 네 사람 받고, 오늘의 동창회를 갖도록 노력했던 초대회장 성보영에게 공로상, 특별상에 조병기, 최여순 (모든상은 팬티).
60년만에 만난, 처음 동창회에 나온 서울조경회사의 회장 정호영의 듬직한 여장부의 모습은 어제 만난 것같이 긴 흐름이 아니었다.
후원금도 많이들 내고 미국에서 고생하는 동무 이영희를 돕는 성금도 마련하여 송금해주기로 하여 흐뭇했다. 2박3일이 왜 이리 빨리 가는지... 그대로 헤어지기 아쉬운 터에 은일정이 긴급제안으로 김제 시골에 있는 자기 별장으로 초대하여 1박이 늘었다.
바쁜 동무들은 떠나고 11명이 아름다운 김제 별장에 몸을 풀고 만찬후에 새벽 1시까지 또 윷놀이를 했다. 너무너무 웃어 배들이 아파 딩굴딩굴 구르며 또 하나의 추억을 남겼다.
고즈넉히 내려다보는 얼굴들은 80을 바라보는 노친네들이 아니라 단발머리의 가시내들이 웃고 떠들다가 지쳐 평화롭게 잠든 천사들이었다.
윷놀이에서 팬티 내기에 이긴 동무들에게서 뺏은 팬티를 잠옷 위에 입고 거실을 어깨동무하고 빙빙 도는데 카메라맨 김기순이 사진찍으려 하니 예쁜 김화중이 "찍지마, 나 시집 못가"라고 하여 또 한바탕 딩굴었다.
9번의 식사시간은 기숙사를 떠오르게하고 즐거웠었다. 마지막 21일엔 군산 새만금을 돌아보았다. 군산의 명물 아구찜은 처녀시절 추억이 엉킨 기억을 새롭게 하였다.
명시 50편 카드를 주며 화장대 서랍에 쳐박아둘 사람은 가져가지 말고 내년 모임때 암송할 자신 있는 사람만 가져가라 하였더니 다들 좋아하고 고마워 하며 가지고 갔다. 기대 되는 일년 뒤의 모임이다.
시카드를 주며 孔子의 말씀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보다 못하다)를 인용해 詩를 외우면서 즐기고 살자고 했다. 또한 마종기 시인(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 교수, 방사선과 의사, 마해송씨 아들)의 “세상적 성공과 능률과 계산만하는 인간으로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아름답고, 겨우 한번 사는 인생이 너무 짧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꿈꾸는 자만이 자아를 온전히 갖는다. 자신을 소유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詩를 읽는 당신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를 말해 주며 시카드를 주었다. 나는 시암송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3박4일의 만남이 끝나는 날, 내년 5월 셋째 화요일 무주 구천동에서 만나기로 여운을 남긴 채 헤어졌다. 지금도 끌어안은 동무들의 체온이 남아 따뜻하게 해준다.
내가 이번 모임에서 '스타'가 되고 돌아 온 것은 문길섭 선생님을 만나 시에 폭 파묻히게 된 행운이었으며, 돌아오면서 내내 “선생님 감사합니다”를 되뇌이었다. 글/ 조병기, 시암송 행복클럽 (전국 50편 암송모임) 회장 (2010- 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