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암송칼럼(2008-14)

제2회 주마등 시사랑회 문학기행

日日新 2010. 4. 10. 19:24

시암송 이야기 - 제2회 주마등 시사랑회 문학기행


지난 가을 제1회 문학기행(벌교, 순천만 지역)에 이어 올 봄엔 섬진강쪽으로 가기로 했다.


출발 날 아침, 구 도청 앞에 세워진 관광버스에 도착해보니 이미 많이 와 계셨다. 김경진 시인과, 내게 종종 문학프로그램 정보를 주시는 허장순 선생님의 모습도 보여서 반가웠다. 김 숙 선생님이 여러 친지들을 모시고 오셔서 문학기행이 더욱 풍성해질 듯한 기대감을 갖게 했다.


날씨는 안심해도 될 거 같았다. 버스는 금세 곡성 IC를 벗어나 섬진강변길로 들어섰다. 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개나리, 벚꽃, 진달래... 오늘 우리 눈은 복이 터졌다.  좌석 곳곳에서 탄성이 흘러나온다.  “참, 좋다!” “오메, 좋다, 너무 좋다!” “누가 날짜 잡았어? 날짜 잘 잡았네~ ” 우리는 길을 따라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개나리에게, 화사한 벚꽃에게, 산기슭에서 조용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진달래에게 축하한다고, 고맙다고 박수를 보내주기도 했다.


내 옆자리엔 이미 ‘시암송반의 전설’이 되신 조병기 선생님이 앉으셨다. 경치를 보며 어린 시절 얘기도 해 주시고 시암송 얘기도 해 주셔서 무척 즐거웠다. 암송시가 백편이 넘은 것도 알게 되었다. 두 권(암송시 목록, 암송시가 적힌 수첩과 시인별 수첩)의 수첩을 보게 되었다. 공부 잘 하는 모범생의 노트처럼 달필로 잘 정리되어 있다. 난 조 선생님의 시 정리에 몹시 감동했다. 


우린 함께 동요를 부르기도 하고, 돌아가며 가곡을 부르거나 시암송을 하기도 했다. 여행길이여서일까. 좋은 마이크를 통해 들리는 시암송이 참 듣기가 좋았다. 여행단체 중 달리는 버스 안에서 우리처럼 시암송을 즐기는 분들이 있을까 싶다.


막내회원인 박봉순 선생님이 주마등 시사랑회에도 노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지었다면서 문희옥이라는 가수가 부른 곡에 가사를 붙여 만든 주마등가(走馬燈歌)를 소개하셨다. 곡이 신나고 가사도 좋다. 배워서 앞으로 모일 때마다 부르면 좋겠다.


쌍계사 가는 길에 들어서는 조금 가다가 차에서 내려 걸어갔다. 벚꽃길을 걸으면서 주변의 꽃들을 보니 더욱 좋다. 쌍계사 입구(주차장)에서부터 식사 전까지 자유시간이 주어져  남자 선생님들과 함께 걸으며 한담(閑談)을 즐겼다. 나중에 우리 팀은 몇분의 여성회원들과 만나 식당의 야외 탁자에 앉아 가볍게 동동주 한 잔을 나누었다. 정다운 분들과 술을 나누며 실없는 얘기를 주고 받으니 마음이 더 없이 흥그러워진다. 끊임 없이 웃음꽃이 폭죽처럼 터진다. 늘 주위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시는 이계윤 선생님의 역할이 돋보인다.

 

지나치지만 않다면 술은 좋은 거라는 느낌이 든다. 술은 쉽게 사람 사이의 서먹한 벽을 헐어주는 거 같다. 시처럼 마음을 즐겁게도 해 준다. 김종간 선생님(86세)이 당신은 술을 안 하시면서도 안주감으로 빙어튀김을 사오셔서 탁자에 올려 놓으셨다. 선생님의 세심한 마음 씀씀이가 무척 고맙게 느껴지고 감동이 되었다.


점심 후엔 최참판댁으로 향했다. 내겐 두 번째 방문이다. 최참판댁 첫마당에 박경리 선생의 연보가 적혀 있다. 결혼과 남편 사별 연도를 보니 함께 산 햇수가 4년 밖에 되지 않는다. 문학은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이뤄진다더니 박경리 선생이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조금 둘러보다가 대청마루에 앉아 간식으로 방울토마토를 먹었다. 조금석 선생님(고교 은사님)이 박노해 시인의 시 ‘다시’와, 정희성 시인의 시 ‘讀經’ 얘기를 해 주신다. 지난 번 강의를 해 주신 이강남 선생님의 '침묵‘에 관한 말씀도 있었다. 조 선생님의 깊이 있는 해설 덕분에 그 시들이 더 좋아진다.


처음 왔을 땐 못 본 문학관을 둘러보았다. 박경리 선생의 ‘토지’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하동 출신의 소설가 이병주, 시인 정공채 선생에 관한 자료도 있다. 문학관을 보며 언젠가 ‘시암송에 관한 문화관’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보기로 했던 조태일 문학관 관람은 입구 도로 공사로 갈 수가 없어서 다음 기회로 넘기고 광주로 향했다. 오는 길에도 바깥 경치를 즐기며 시암송과 노래를 이어갔다.


광주에 도착. 문흥지구의 한 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식당 벽에 임보 시인의 “마누라 음식 간보기”란 시가 크게 붙여져 있다. 음식점에서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보게 되어 반가웠다. 모두들 행복해 보이신다. 무사히 ‘잊을 수 없는 환상적인’ 여행을 잘 마치게 되어 감사하다. 더 없이 좋은 날씨에, 수고하신 임원들께,  주마등 회원님들께, 자리를 함께 해 주신 분들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