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암송칼럼(2008-14)
푸슈킨의 '삶'
日日新
2008. 12. 27. 22:49
난 R.O.T.C. 장교로 임관하여 전방에서 2년간 보병 소대장으로 군복무를 했다. 나를 아는 친구들은 내가 어떻게 40명 가까운 병사들을 이끄는 소대장 노릇을 했는지 의아해한다. 체육시간에 축구시합을 한다고 모두들 공을 따라 운동장을 누빌 때 혼자 철봉대 곁에 남아 공상이나 하고 있었으니 그렇게 생각할 밖에. 내가 속한 부대는 예비사단이라 상급부대의 검열이 많아 이를 대비하느라 장교건 병사건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다. 나는 군복을 벗고 자유의 몸이 될 날이 손꼽아 기다려졌다.
이렇게 힘든 군복무 중 푸슈킨의 '삶'이란 시가 떠올랐다.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살고 모든 것은 일순간에 지나간다. 그리고 지난 것을 그리워하느니라." 이 시의 마지막 시구처럼 힘들고 괴로운 생활도 일순간에 지나갈 거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평안해지고 힘이 솟아났다. 병사들에게도 용기를 주고 싶어서 틈나는대로 외우게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중권 씨는 이런 고백을 했다. " 지금도 나는 입 안에서 혼자 푸슈킨의 '삶'을 읊조려 볼 때가 많다. 이 시를 외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릿속이 명료해지는 것을 느낀다." 시의 한 구절이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여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예가 적지 않으리라 믿는다.